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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Jul 28. 2022

펭귄은 없어도 시원한 빙수는 있다

펭귄 마을서 만난 추억의 작두샘

초복과 중복 사이 무더운 날 조카와 함께 벽화와 공예작품들로 유명한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을 다녀왔다.

익산에서 KTX를 타고 30분 정도 지나 광주 송정역에 도착했다.


목포에서 상경해서 기다리고 있던 조카와 합류하여 점심시간도 되고 해서 송정시장 30년 유명 국밥집에 들러 국밥을 함께했다.  모둠순대를 시켰는데 입소문만큼 국물이 순대 특유의 잡내도 별로 없고 묘하게 맛있었다. 역시 맛의 본고장 전라도임을 인정 인정.

    

역사를 간직한 송정역 시장

지하철을 타고 금남로 4가 역에서 하차하여 펭귄마을까지 곧장 걸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노점 하시는 분께 도움을 청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날이었지만 50이 넘도록 광주를 제대로 구경해 본 적 없어서 가는 내내 들뜨고 설레었다.

   

천변 가로수에서 소리치며 울어대는 메 미소리와 천변에 무성한 풀들이 성하기 한 여름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광역시 도심 풍경 치고는 제법 한산했다.  15분 정도 걸어서 펭귄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니 공예가들의 품들과 페기 처분된 고물들을 재활용 생명을 불어넣은 수많은 작품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골목 투어시간은 길게 잡아도 한 시간 남짓. 예상했던 것보다 볼 것도 많고  아나운서가 음악방송을 하는  방송 부스도 있어 새로웠다.


문득 이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군산시 말랭이 마을 골목길이 떠올랐다.

말랭이 마을도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많은 홍보로 문화명소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골목을 구경하는 동안 화장실이 급해 우연히 한옥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상주 작가님 들의 집인지 개인의 집인지 알 길이 없으나 마당에 두둥 작두샘이 떡하니 눈에 들어온다.

     

정겨운 작두샘이 오래전 유년 시절의 추억을 불러왔다.

30년 전 그때 마을 꼭대기에 있던 우리 집은 샘이 없었다. 옆집 상우네 집에는 대나무 숲에서 나는 죽간 수로 유명한 물맛 좋은 샘이 있었다.    


우물이 귀하던 시절 엄마와 나는 저녁밥을 짓기 전 엄마는 물동이를 이고 나는 물 바케스를 지고 상우네 집으로 물을 길으러 다녔다.  

   

작두 샘은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위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중물로 붓고 "푸컥 푸컥" 힘차게 위로 아래로 올리고 내리 고를 반복하면 약간 녹이 슨 무쇠 주둥이 끝으로 시원한 물을 콸콸 쏟아냈다.


                        펌프질 해보는 조카


마중물은 단 한 바가지의 물이지만 땅속 깊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샘물이 펑펑 쏟아지게 만드는 고맙고 소중한 처음 물이다. 사람도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정성껏 마중물을 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두 평 남짓 고운 콘크리트로 마감이 잘된 상우네 샘은 깊이가 상당해서 한 여름에도 깊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서늘했다. 냉장고가 없던 때라 상우네 집과 우리 집은 둥그런 김치 통 몇 개를 긴 줄에 매달아 우물 속에 보관하며 천연 김치냉장고 로도 썼다.

   

한 여름 땡볕에 들일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들은 그 깊은 샘물을 끌어올려 등목을 하곤 했다.

엎드린 내동에 엄마가 물 바지로 찬물을 퍼부으면 짜릿한 냉기가 척추를 타고 머리끝으로 올라왔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한여름 무더운 열기는 어느새 저만큼 도망을 쳤다.

엄마랑 옆집 미숙이 누나는 큰 통에 받아 놓은 물로 푸성귀를 씻고 다듬고 삶은 국수를 찬물로 수차례 헹구어 냈다.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물을 퍼올려 쓰니 물 낭비가 없어 좋은 것이 작두샘이다. 한마디로 지혜로운 절약형 샘 인 것이다.

   

아련하게 추억 돋는 작두샘은 보이는데 미숙이 누나도 없고 할머니 아버지 엄마도 안 계신다.

그리움과 추억은 영원한데 함께한 사람들은 세월과 함께 이제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추억은 추억으로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가슴속 깊이 묻어 두어야겠다.

                                             펭귄마을 시비 

 아기자기 이쁜 골목길 구경을 마치고 나니 허기도 지고 갈증도 났다. 펭귄 마을 위쪽 로터리 쪽에 괜찮은 카페가 보인다. 가정집을 개조했는지 별관은 한옥이고 본관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대문 기둥을 칭칭 감고 있는 덩굴식물이 인상적이었다.

   

뭘 먹을까? 잠깐 고민하다 망고빙수를 시켰다. 투명한 유리잔에 노란색 망고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한 입 떠 넣으니 달달하면서 미끄덩 거리는 식감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린다.

남극의 펭귄은 없어도 남극의 하얀 빙하 위에 서있는 것처럼 망고빙수는 시원했다.

    

조카를 먼저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흔히 광주를 노잼 도시라고 말한다는데 낯선 곳을 왔다는 설렘과 아기자기한 골목길 벽화들, 각종 공예품과 망고빙수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뜨거운 피를 뿌렸던 1980년 5월의 광주. 그 혼이 깃든 국립 5.18 민주묘지와 (구) 전남도청 등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무더운 날 마주한  광주의 파란 하늘과 펭귄마을 골목길 벽화들, 시원한 망고빙수와 송정역 영명 국밥까지 모두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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