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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트로트

영탁이 딱이야 딱이야!!!

by 파랑나비


2019년 가을 모방송사의 미스 트롯을 시작으로 각 방송사마다 수많은 오디션 경연대회를 편성할 만큼 대한민국에 깜짝 트로트 열풍이 불어닥쳤다.

하도 비슷한 경연프로가 많아 국민들은 조금씩 지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해 3월 내일은 미스터 트롯 경연 당시 난 3등을 한 이찬원을 응원했다. 얼굴이 내 스타일이거나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20대의 어린 청년이 지방에서 상경해 올곧게 한우물만 파더니 최종 결선까지 진출한 그 부단한 노력과 성실함에 감동받아 열렬히 지지했다.

최종 결선에서 그는 당당히 미를 차지하고 나의 기대에 100프로 부응했다.

(찬원은 존버는 승리한다를 몸소 보여줌 ^^)


사실 미스 트로트에서는 송가인 씨가 예선에서 부른 「한 많은 대동강」이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첫 소절을 듣고 온몸에 전율이 일어 일찌감치 스타 탄생을 예감했다.

부르지는 잘 못해도 듣는 귀는 있으니까. 애절한 노래를 듣다가 그 원곡은 손인호 원로가수가 부른 곡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찾아가지 못하는 북녘 고향땅을 떠올리며 그려낸

한민족의 애환이 담긴 노래

가인 씨의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무한 반복해서 한 많은 대동강을 들으면서

뜬금없이 대동강은 왜 한이 많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대동강을 검색하고 자료를 찾아보았다.

대동강은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 시대 고려 시대까지 상당히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접해 있었고

각 왕조들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유서 깊은 강이었다.

특히 고려시대 문인들 중 정지상은 대동강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의 문학작품들은 워낙에 서정성이 뛰어나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배웠던 기억이 난다.


“늬라서 붓을 잡아 새을자 물 위에 그렸던고”라고 읊은 바 있고,

또 별리의 정을 읆은시 「송인」은 더욱 유명하다

“비그친 둑에 풀빛 새롭고

그대를 남포로 보내니 슬픈 노래 절로이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다하리

이별의 눈물 해마다 강물에 더하네”

김부식 또한 개성 부벽루에서 바라본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아득히 산봉우리 줄지어 늘어서고

성 아래 찬 강은 만만히 흐르도다

버들 우거진 저 숲은 술 파는 집 아닌가

달 밝은 이 밤 고기 잡는 배는 어느 곳에 머무던고”



트로트 하면 여전히 중 · 장년층이 접수한 그런 대중문화예술

흔히 뽕짝으로 불리기도 하고 회식장소에서 김대리 강 과장이 갖춰야 할 필수적 소양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


윗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울 엄마

유년시절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던 엄마 덕에 난 자연스럽게 트로트를 접하게 되었다.

해마다 동네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지신밟기를 할 때면 어른들을 따라 하루 종일 춤을 추고 용돈을 받고 그 풍물판이 즐거워 파할 때까지 즐기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다.

이미 흥부자 부자였던 듯(^^)

추석과 설 명절에 동네 청년위원회에서 개최한 마을 콩쿠르대회는 초저녁에 시작해 밤 12시가 지나

종료되는, 그 시절 나름 성대한 마을축제였고 행사였다.

무엇보다 거기에 걸린 상품이 농사짓는데 꼭 필요한 낫, 호미 쇠스랑뿐만 아니라 고가의 전기밥솥, 다리미, 가스레인지, 냉장고까지 협찬되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그 시절 입상을 위한 동네 어른들의 노래 경연은 치열했다.

곱고 노래 잘하셨던 울 엄마는 늘 기본적으로 매년 3등 안에 입상하는 실력파 가수였다.

엄마의 18번은 목포의 눈물, 영산강 처녀, 삼천포 아가씨, 여자의 일생 등등

그 시절 히트가요는 고인이 되신 남인수, 배호, 고복수, 손인호 선생님, 생존해계신 이미자, 조용필, 현철, 주현미 이런 가수분들의 노래가 주를 이루었다.

평소에는 생전 엄마를 칭찬할 줄 모르던 무뚝뚝한 아버지도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을 해 가정살림에

보탬을 주는 엄마가 자랑스러운지 콩쿠르대회 이날만은 예외적으로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으셨다.

장가 하나는 잘 들었다고.

엄마의 이런 유전자 탓이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주변 친구들은 조용필, 이선희, 전영록, 김범룡, 김학래, 한마음, 이지연, 양수경... 이런 가수들 노래를 좋아하고 따라 불러도 난 항상 쌍쌍파티의 스타 주현미 누나의 노래를 불렀다.

숙제를 할 때는 비 내리는 영동교, 들에 나가 소를 먹일 때는 짝사랑, 학교 소풍을 가서는 신사동 그 사람. 난 그냥 현미 누나의 간드러지게 잘 꺾고 넘어가는 애절한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주현미 씨와 국카스텐



시간 지나 2019년 가을, 「내일은 미스 트롯」 오디션 경연을 시작으로 트로트 붐이 일기 시작하자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한민족의 대중예술이 한반도를 강타하기 시작하는구나’.

더 이상 나 혼자 아재 소리를 들으며 외롭게 트로트를 즐기지 않게 되어서 더욱 좋았다.

하지만 과유불급 이라더니 미스터 트롯 탑 6 결선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 다시 보기를 시청하면서 직장동료 장례식장을 가는 길에 2차선 도로 끝에 작업 중인 차량을 보지 못하고 들이박는 내차를 폐차시킬 만큼 큰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천운인지 차만 박살이 나고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아 한 일주일 입원 치료를 마치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트로트를 사랑한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할부도 안 끝난 세차한 대 해 먹고 중고차 뽑는데 몇백,

상대방 차 손해배상, 다음 해에 부담할 인상될 보험료까지 금전적 손해가 엄청났다. (어이없음은 내 몫 ㅋㅋ )


그래서 그 사고 이후 나의 징글징글한 트로트 사랑은 멈췄을까?

대답은 NO다 그 뜨거운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스터 트롯 오디션 때는 나이 제한에 걸려 참가를 못해 아쉬웠고

KBS 트롯 체전은 실력이 부족해 예심에서 떨어져 속상했다.

트롯 체전 참가 동영상 찍는다고 아파트에서 라이브로 악쓰다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관리사무소로부터 전화를 받기도 하고, 이어폰 꽂고 엘리베이터에서 흥얼거리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최근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진해성의 사랑반 눈물 반을, 집안 청소를 할 때는 영탁의 누나가 딱이야를 신나게 들으며 나의 댄스 신공, 빗자루 춤을 추기도 한다 (이소룡 츄리닝은 당연히 입지 않고)

이런 내 모습 내가 봐도 영락없이 정신줄 놓은 아재다.

16살 내 딸 서현이는" 아빠 창피하니까 적당히 하라" 고 제법 의젓하게 아빠를 나무란다.

아재면 좀 어때? 내 몸속에 트로트 유전자가 있는 것을.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 인생 생긴 데로 살면 편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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