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모처럼 에너지가 충만한 활기찬 일요일 아침이다. 오래간만에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는 어제 즐거운 축제장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덕분이다.
야행~ 내가 정의 내린 야행은 “야! 행복한 시간이다”
군산에서도 이번 주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군산 내항 및 원도심 일원에서 문화예술축제인 군산 문화재 야행이 열렸다.
이번 군산 야행 프로그램은 총 8개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밤에 비춰보는 문화재 야경, 밤에 걷는 거리 야로, 밤에 듣는 역사이야기 야사, 밤에 보는 그림 야화, 문화재에서의 하룻밤 야숙, 밤에 즐기는 음식 야식, 밤에 감상하는 공연 야설, 역사가 살아 있는 문화장터 야시
즐거움과 감동이 가득한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회로 볼거리가 풍성하고
체험부스와 푸드 존의 다양한 먹거리가 축제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호! 축제로구나~” 예전에도 몇 번 야행이 열린 적이 있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한동안 중단되었고 가까운 익산에 살고 있어도 제대로 구경해 본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팽나무 아래 수궁가를 들려주는 여류 명창
금요일 저녁 9시. 운동을 마치고 장미동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 뒤 커다란 팽나무 아래 마련된 장미 공연장에 도착했다. 무대를 꾸며 놓은 아름드리 팽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뜻하지 않게 군산 야행 축제장에서 만난 아름드리 팽나무는 옛 추억과 함께 정겨웠던 고향의 모습을 잠시 떠 올려 주었다.
팽나무의 넉넉한 그늘은 유년시절 내 고향에도 마을의 평안함을 기원하며 아버지께서 상쇠가 되어 춘삼이 아재를 포함한 열댓 명의 사물놀이 패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신명 나게 사물놀이 굿판을 열고 여름밤 시원한 수박을 앞에 놓고 마을의 대 소사를 결정하던 중요한 야외 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수년 전 태풍으로 인해 어린애 세명이 안아도 다 껴안지 못했던 아름드리 팽나무가 쓰러지면서 마을 어른들의 상실감은 컸다. 지금은 덩그러니 빈터만 남아있어 고향에 방문할 때마다 속이 쓰리다.
군산에 십 년 넘게 살았어도 장미동 이 자리에 오래된 팽나무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류 명창이 용왕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빼내려 어떻게 하든 용궁으로 토끼를 데려가기 위해 애를 쓰는 별주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수궁가를 현대적 버전으로 각색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전래동화를 각색해 락 버전으로 공연을 하니 그 또한 색다르고 신선했다.
야행 축제 덕분에 지방도시 군산에 오랜만에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넘쳐났고 풍성한 볼거리를 즐기고 다양한 체험행사를 경험해 보려는 사람들로 옛 원도심 일원이 시끌벅적 활기가 넘쳐났다.
코로나로 장사가 되지 않아 울상이던 원도심 상인들도 모처럼 덩 달아 신이 났는지 얼굴들이 밝다.
개인적으로는 야밤에 본 그림 전시회와 문화 해설사와 함께한 근대문화유산 답사가 제일 좋았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근대 군산 문화재 관련 유산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구 군산세관 본관, 군산 빈해원, 동국사 대웅전, 군산 해망굴)등 유산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책이나 인터넷 매체보다 생동감이 있어 알차고 오졌다.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서 광목옷을 입고 시낭송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옛 거리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영화동 시장 골목에 떡볶이집 안젤라 분식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스무 살 내 청춘이 빛나던 그 시절 주머니 가벼운 고학생에게 두 편의 영화를 연속해서 상영해 주던 명산동 추억의 코아 극장, 군산 대표 빵집 이성당의 단팥빵 영화동 안젤라 분식 떡볶이,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던 음악다방 등은 무난한 데이트 코스였고 젊음의 아지트 이기도 했다.
도시와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도 긴 세월을 무던하게 버티며 아직 건재한 분식집 간판이 반가웠다.
늦은 밤이라 친절한 주인 이모님은 못 뵀지만 그 시절 공부 열심히 하라며 서비스로 계란 한 개를 통 크게 올려 주시던 인심이 후하셨던 이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니 콧날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찡해졌다.
축제 둘째 날 운동 후에 불면증이 가끔 있는 나를 위해 동생들이 카모마일을 간단히 한잔 하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갑작스레 두 제수씨의 합류로 우동을 파는 일본식 술집에서 국물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한잔 마시게 되었다.
주문한 막걸리가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아서 내 입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순한 듯 탁한 듯 적당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위장에 머무르자 가을바람과 함께 기분 좋은 취기가 적당히 올라왔다. 순식간에 얼굴이 불콰해졌다.
선선하게 부는 가을바람, 내년 1월이면 돌이 되는 직장 동생 성철이 딸내미의 천진한 웃음과 살 냄새가, 도란도란 나누는 담소, 무한 행복 바이러스들이 높아진 밤하늘의 잔별들과 흥겨운 축제 분위기와 어우러져 달빛처럼 고요히 우리들 온 마음에 스며들었다.
말랭이 마을에서 시 낭송하시는 이숙자 작가님(멋지심)
대부분의 공연들이 밤 열한 시까지 이어졌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지인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았다. 코로나 창궐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 냄새가 찐하게 뿜어져 나오니 없는 에너지도 생겨나 살맛이 났다.
부디 다가오는 가을날 더 이상 몹쓸 현대판 전염병이 다시 고개를 들지 않기를 염원한다.
군산 문화재 야행. 군산 밤하늘에 높이 걸린 달이 모두를 밝게 비쳐주어 행복하고 멋진 축제가 매년 개최되기를 꿈꾼다. 다가올 다음번 야행에 거는 기대가 벌써부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