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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와 탱고 춤을

by 파랑나비



국민체력 100 검사 결과 순발력이 떨어지고 유연성은 크게 미달이라는 측정 결과를 받고서도 여전히

어리석게도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커피, 만화책, 달달한 과자, 슬림한 청바지 등등

지독하게 치명적인 두 바퀴로 달리는 것들도 그중에 하나

내 인생 최초로 두 바퀴 달린 것에 빠져든 때는 열네 살 중1 때.

비포장 진흙탕 길을 매일 10리씩(4킬로)를 걸어서 통학을 하던 시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읍내의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당시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 살림에 거금 10만 원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큰돈이었고 난 두 달 넘게 엄마를 조르고 졸라 생애최초 번쩍번쩍 삼천리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은색과 검은색이 적당하게 배합된 튼실한 프레임과 굵은 바퀴를 자랑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비가 오면 비 맞을 세라 비닐을 덮어주고,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헌 이불을 덮어주었다. 매일 기름칠을 해주며 지극정성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했다. 당시 나에게 자전거는 지금의 BMW이나 포르셰 스포츠카 레벨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값비싼 외제차보다 훨씬 소중한 나의 보물 1호였다.


비 내리는 날은 도로 상태가 엉망인지라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려야 하는 자전거의 특성상 물받이가 제대로 없었던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면 세찬 분수대의 물줄기를 맞은 것처럼 온통 흙투성이 었다. 일기예보도 정확하지 않아 장대비 라도 만나는 날은 난리가 났다. 가방 속 책까지 몽땅 젖어 책은 너덜너덜 쭈글쭈글 활자가 희미해질 지경이었다.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해서 25만 원을 주고 빨간 정열의 붉은색 중고 스쿠터를 구입했다. (일명 나의 적토마)

아르바이트로 새벽 우유배달을 하던 나에게 스쿠터는 기동성과 경제성에서 적수가 없이 전장을 누비는 천만 군사의 대장군처럼 든든했다.

구입 당시 스쿠터는 이미 나이를 먹어 배기통 머플러가 터져 탱크 소리가 났지만 청춘의 오만함 덕분에 용감하게 매일 자취방에서 중앙도서관까지 오고 가던 그 시간들이 세상 행복했다.

시험기간에는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 일찍 집을 나섰는데 요란한 엔진 소리에 온 동네 개들이 깨어나 미친 듯 짖어대기도 하고 봄에는 벚꽃 휘날리는 교정을 누비고 가을에는 억새가 춤추는 은파호수를 룰루랄라 휘젓고 다녔다.

휘발유 3천 원어치를 넣으면 거의 한 달을 탔던 거 같다. 예나 지금이나 2 행정 사이클 엔진들은 연비 하나는 짱. 가난한 고학생에게 50CC 스쿠터는 최적의 교통수단이었다.

90년대 대학교는 운동권이 강세였고 정치권의 불합리한 합당에 보도블록을 깨고 화염병을 던져 불의에 항거하던 혼돈의 캠퍼스였다. 해방 광장에 모여 구국 선언문을 낭독하고 한차례 경찰과 대치가 끝나면 어김없이 잔디밭에 모여 막걸리 타임을 갖곤 했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넘버 없는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자유로운 영혼의 낭만가객 그게 나였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스쿠터를 주행할 때면 코 끝에 라일락 향기가 스며들고 가슴에 싱그러운 꽃바람이 가득 차 올라 하늘 위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두 바퀴 달린 것이 내게 주는 최고의 선물. 약간은 거친 날것의 신선함 이였을까?


서른 살, 회사에 입사 후 250cc 외제 빅스쿠터를 타고 한 1년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섬진강 벚꽃투어를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무릎이 깨지고 앞니 1개를 털고 난 후, 가장이라는 가정적 지위도 있고 하여 한동안 몸 사리며 두 바퀴를 멀리 하며 지낸 적도 있다.

쉰 살, 숨겨 든 질주본능이 깨어났을까? 한참 당근 마켓에서 중고거래하는 것에 맛을 들린 어느 날 한 여대생이 당근에 올린 “상태 깨끗하고 근거리 통학만 잠깐 했어요” 배터리 상태 완전 최상이라는 친절한 제품 소개에 끄덕끄덕 깊이 공감하며 ‘그래 이건 사줘야 해’ 6인치짜리 전동 킥보드를 30만 원을 주고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차를 타고 다니면 될 곳을 굳이 헬멧이며 무릎 보호대를 차고 킥보드를 타고 나가는 나를 애들은 도무지 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어쩌니 애들아 이게 나란다.

도로의 갓길을 달려야 하는 킥보드의 최대 천적은 주로 택시와 배달 라이더, 술 드시고 역주행하시는 자전거 타는 어르신 들이다. 뭐가 못마땅한지 빵빵거리는 분들이 많고 신호 대기 중에는 꼭 한마디 하고 지나간다.

“왜 저런 걸 타고 다니누. 그러다 죽어요.” ‘글쎄 내가 보기엔 빨간불 무시하고 죽어라 달리는 그분들이 더 위험해 보이는데’.

킥보드는 바퀴가 작아 시속 25킬로를 넘어서면 차체가 심하게 떨리면서 안정감이 급속하게 떨어진다. 두 바퀴 달린 것들을 사랑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과속ㆍ 내가 속도 레버를 당기는 만큼 저승문이 바로 가까운 곳에서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릴 수도.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달리는 것에 몰입하는 그 순간

난 지구 밖을 날고 있는 파랑 망토의 근육 빵빵 슈퍼맨이 된다.

바람에 나를 맡기고 아이의 웃음 같은 청량함을 온몸으로 맞을 때의 그 짜릿함. 위험함은 잠시 거들뿐.

온 세상은 핑크빛으로 물들며 황홀하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내 나이도 어느새 반백살. 이 나이가 되어서도 두 바퀴로 굴러다니는 것에 대한 사랑은 참 늙지도 않는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갑질 회장이 타고 다니던 두발로 서서 타는 전동 휠이 내 시선을 자꾸만 잡아끄는 요즘

자금만 확보되면 조만간 또 불쑥 저지를지도 모르겠다.

기차 이용 장거리 출 · 퇴근. 휴대가 간편한 무언가 탈것이 필요함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가을로 가는 이 계절.

오늘도 난 만경강 자전거 길에서 킥보드와 함께 쏟아지는 별을 향해 첨벙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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