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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를 꿈꾼 해양경찰
무모함 반 스푼, 용기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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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나비
Aug 17. 2021
배롱나무 꽃이 붉게 물들고 매미들이 악을 써대며 우는 이 계절.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2013년 부안군 변산파출소에 근무할 때 다소 무모하고 서툴렀던 나의 첫 인명구조에 관한 이야기
그해 여름은 유난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해수욕장 개장 기간이 끝나 안전요원이 이미 철수를 한 상태였다.
전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근무교대 시간이 다 되어가는 아침 8시 20분경 파출소에서 멀지 않은 격포 해수욕장에 익수자(여학생)가 발생했다 는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순찰차를 운전해 동료 두 명과 신속하게 출동했다.
해안가로부터 꽤 멀리 약 30미터 정도 떨어진 물속에 여학생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이미 많은 기자들과 관람객 등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먼저 와 있었다.
누가 들어가냐? 짧은 순간 동료 두 명과 복잡한 시선이 마주쳤다.
뭐였을까? 그날 그 애매한 시선들의 의미는.
‘그래 니들 두 사람 장가도 안 갔는데 내가 들어가야지’ 선택의 여지없는 그 순간 잠깐의 주저함을 뒤로하고 레스큐 튜브를 어깨에 메고 난생처음 의기양양 겁 없이 바다로 입수했다.
익수자에게 다가갈 때는 모든 여건(조류, 바람, 체력)이 완벽했다. 서늘한 물 온도를 느끼며 긴장감 속에 익수자 가까이 도착하니 음주를 한 익수자는 저체온증으로 탈진해서 의식이 거의 없었다.
평소 배운 데로 익수자를 뒤집어서 튜브로 감싸고 끌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막상 끌고 나오려고 시도하니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급격한 체력 저하가 온 것이다.
아뿔싸! 핀(일명 오리발)도 없이 급하게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체력 좀 길러놓을걸, 수영장이라도 부지런히 다니는 거였는데...
대책 없이 열정만 가득해서 현장에서 성급했던 나 자신을 원망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었다.
죽기 살기로 온 힘을 다해 해안가로 수영을 해보았지만 조류까지 강해서 인지 좀처럼 육지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바다라는 놈은 마치 오늘 나를 물귀신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듯 익수자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
다 내려놓고 이제 그만 쉬라는 검은 악마와 해낼 수 있어요 라며 나를 보살피는 하얀 천사가 마음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성스러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가쁜 숨은 턱까지 차고 해수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해안가 동료가 서있는 곳까지 10미터, 5미터, 3미터...... 동료를 만나는 곳 2미터 전. 난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최경장 나 죽겠다. ” 꼬르륵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정신줄을 막 놓으려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동료가 나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요단강을 건널뻔한 위급한 상황이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쪽팔림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 그 순간 정신이 반쯤 나가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해안가에 도착하니 해수욕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 (상인들과 다수의 방관자(?)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남의 속도 모른 체)
동료들이 여학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생수를 먹이고 모포를 덮고 안정을 취하게 해 주었다. 인적사항과 왜 술을 마시고 바다에 들어갔는지 등 상황을 파악하고 난 후 서툴렀던 내 생애 첫 인명구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성공은 했는데 굉장히 찝찝한 뭐 그런 기분)
악천후 속 응급환자 호송
그 사건 이후 나는 집 근처 수영장에서 아침 일찍 수영을 한 시간씩 하면서 근 1년 동안 수영실력을 향상하려 나름 노력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나의 수영실력은 어느 정도 일까? 부끄럽게도 맥주병은 간신히 면했지만 입수해서 요구조자를 수십 미터씩 끌고 나올 만큼 강인한 체력과 우수한 수영실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누군가 배움에는 절대 늦음이 없다.라고 했는데 늦은 것도 있더라
올해도 근무지 목포에서 어김없이 구조역량평가를 검정받았다.
자유형과 평영, 잠영 중 자신 있는 종목으로 두종목 선택, 왕복 50미터 완주하기. 잠영은 최소 15미터 이상
평가 며칠 전부터 나름대로 접근 처 수영장에서 몸을 풀어놔서 무난하게 통과는 했다.
황선우 정도는 아니어도 수영장 고수 이모(?)들을 이기고 싶은 마음은 있다. 언제나
그렇다면 우리 해양경찰은 모두 다 수영을 잘할까?
정답은 꼭 그렇지는 않다 라는 거다. 타고난 저마다의 운동신경과 소질이 다른 탓에. 개인차가 크다
그럼 국민의 안전은 누가 지키고 물에 빠지면 누가 구해 주냐고 물으실 거 같다. 걱정 마시라
짱가보다 더 든든한
해양경찰구조대가
항상 우리 곁에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강철부대를 시청하신 분들이라면 김민수 씨를 알 거다. 그분처럼 잘생기고 체력 좋은 멋진 에이스들이
거기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구조 거점 파출소
를 운영하여 시속 30노트로 달릴 수 있는 연안구조정을 배치하고
5분 안에 출동 가능한 신속한 구조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갯벌 고립객 구조하는 멋진 구조대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우리 해양경찰은 업무의 특성상 특별채용을 많이 하는 조직이다.
배를 운항하는 함정요원(항해 직별, 기관 직별)부터, 의무경찰, 수사, 구급, 해경학과, 교통관제, 특공(전술), 특공(EOD), 통신, 홍보, 조선기술, 건축, 항공관제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모집한다.
깊이 알면 머리 아프니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이 해양경찰에서 일을 하는구나. 바다와 동고동락하는 조직이라 그런가 보다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21년째 제복을 입고 있지만, 바다는 여전히 만만치 않고 견뎌야 하는 계급장의 무게는 매일 반 스푼씩
내 맘 속에 더해지는 것 같다. 책임감이라는 쌉싸름한 향과 함께.
바람이 거센 오늘. 바다가족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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