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가위 차례상
올해도 50만 원짜리 상으로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올해도 50만 원짜리로 부탁드립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서울 사는 후배 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골에서는 드물게 사법고시에 합격해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녀석이다. 어렵게 공부한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이 녀석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근무하고 있던 지방신문에 ‘개천에서 용 났다 “며 성공 스토리를 게재하기도 했다.
내가 대학 때 방학이면 초등학생과 중학생 몇몇을 모아 놓고 영어도 가르치고 대도시 이야기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 주던 그런 녀석 중 한 명이였으니 30년 세월이 흘렀어도 관심과 애착이 가는 그런 녀석이다.
더구나 결혼 8년 만에 성격차이가 난다며 이혼을 하기 전 상의를 한 사람도 나였으니 녀석의 일생에 어느새 내가 슬그머니 관여를 하게 된 셈이다.
이 녀석의 전화는 곧 있을 추석 때 경주 보문단지의 한 콘도에서 지낼 추석 차례상 음식을 경주의 한 전통시장에 주문해 달라는 부탁이다. 벌써 수년째 이맘때 면 계속되고 있는 이런 부탁에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꺼림칙 한 면이 없지 않다.
이 녀석은 벌써 3년째 추석 차례를 보문단지 콘도에서 지내고 있다. 그 이유를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다. 몇 년 전 또 다른 후배 녀석이 보문단지 내 호텔 커피숍에서 이 녀석을 알아보고 내게 해 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혼을 한 후 3년여간을 혼자 지내던 녀석에게 경주가 집인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녀석과는 나이차가 20년에 가까운 젊은 아가씨지만 벌써 정이 들었는지 수년째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전화가 걸려 왔으니 연휴가 긴 추석 명절에 바로 이 여자 친구와 함께 보내기 위해 경주를 찾는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다.
둘이 좋아 진지한 만남을 이어간다면 나이차가 무슨 대수냐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게는 이렇다 할 의논이 없으니 심기가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아마 지금까지 녀석이 하는 일에 심하게 반대를 해본 일이 없으니 나중에 의논해도 되겠다 믿기 때문이 아니가 짐작은 되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일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간혹 추석 명절에 바쁜 일이 있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관광지에서 한해 정도는 차례를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연애에 정신이 팔려 조상의 묘는 찾지 않고, 형제와 친지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서로는, 더구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콘도나 호텔에서 50만 원, 백만 원 하는 차례상을 주문해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내가 편한 방식으로, 내가 편한 곳에서 차례를 지내겠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 이 '가배'는 오늘날 한가위의 '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뜻은 ‘가운데(中)’ 또는‘ 반(半)’이라는 의미라 한다. 따라서 한가위는 가을의 반, 중추(中秋)의 한국식 표기이다.
또한 예로부터 가을 수확을 하면 감사의 뜻으로 조상님께 먼저 햇곡식을 올리는 천신(薦新)을 했는데, 상례적으로 추석날 천신을 했었다. 그래서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는 햅쌀로 만든 떡, 술 등과 오색 햇과일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와 유래가 깊은 명절인데도 차례에 정성은 고사하고 집도 아닌 관광지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사실은 도(道)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최근에는 세태가 많이 변했다. 젊은 30,40대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50대들 조차도 50만 원짜리 상, 백만 원짜리 상하며 ‘설 차례상’을 배달시켜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하니 세태가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이러니 명절을 앞두고 가족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던 모습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될 공산이 커졌다. 설 연휴 과도한 가사 노동과 시댁 식구들 간 갈등으로 며느리들 대부분이 심각한 명절증후군을 앓고 고향 가는 길이 고생길이 되고 있는 교통체증 등은 이 같은 세태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나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아마도 유교적인 의식을 가진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후배 녀석과는 10년 이상의 터울이 있으니 아마 녀석은 이 같은 고민을 않고 쉽게 결정을 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명절이나 경로효친, 예의범절 등의 전통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자 정체성이고 글로벌 경쟁력이라고 믿고 있지만 갈수록 그런 믿음이 옅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젊은 신문사 후배 녀석들의 말을 들어보면 변하고 있는 세태가 실감이 난다. 한 녀석은 제사상의 지방이 사진을 거쳐 태블릿 PC 초상화로, 제수 음식 또한 떡 대신 피자, 수정과 대신 커피를 놓으면 어떠냐고 한다. 조상들에게 생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처음으로 맛보게 하는 것도 어른에 대한 공경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글로벌 정보화 시대를 맞아 제사 지내는 장소도 반드시 종가여야 한다는 격식에서 탈피해 가족 간 해외여행지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다음 세대들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생전에 부지런히 해외 감각을 익혀 놓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해외 어느 곳에서 제사상을 차려놓아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려움 없이 찾아갈 수 있으니 장소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명절과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의 의미와 계승의 절박함이 떠나지 않는다. 어느 일에나 한계는 있다.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절대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추석과 설 명절에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하고 나아가 계승해야 할 차례문화는 분명 양보할 수 없는 절대가치로 여겨진다. 나의 세대에서 한꺼번에 전통이 사라지는 꼴을 볼 수는 없는 법이다.
내일 당장 우리 고유의 명절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한류 중에 차례 풍습이 최고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추석 특집면을 큼지막하게 싣도록 조치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후배 녀석의 이 같은 전화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도록 단호한 뜻을 전달해야 할 것 같다.
내게는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였던 녀석의 부모님과 조상들이 노하지 않도록 집에서 그리고 나이 차이는 많지만 며느리의 정성이 담긴 차례상이 차려지도록 처음이자 마지막 잔소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명절 훨씬 전부터 생선을 말리고 방아를 찧고, 놋그릇을 닦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 이 글은 2010년 9월에 쓴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