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금보다는 축의금
집안을 정리하다 오래된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30년 전 결혼할 당시 친인척들과 동네 이웃들이 낸 축의금 장부였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장부의 겉표지는 누렇게 탈색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래됐나?, 마누라가 오면 보여주고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아마도 그렇게 물으면 집사람은 “맞아 너무 오래같이 살았어, 한번 바꿔 볼까나”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마 십중팔구 그렇게 말할 공산이 크다. 축의금 장부도 나이를 먹어 내 기억력처럼 색이 바래지고 사인펜으로 적은 글씨도 내 눈처럼 희미해졌다.
며칠 전부터 책상 한 귀퉁이에 청첩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결혼 시즌이 왔다는 뜻이다. 게 중에는 동네잔치도 있고 친구, 전 회사 동료도 있어 어림잡아 5,6건은 되는 듯하다. 한 장 한 장이 청구서라 생각하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나는 아직 축의금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아직 아이들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부의금은 수도 없이 냈다. 보통 기자라는 사람이 상을 당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중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있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찾는 사람도 있다. 기자라면 지방에서는 지역 유지쯤 대우를 받고 힘(?)깨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상을 당했을 때마다 부고를 하지 않았다. 철저히 친익척, 동네 지인들 위주로 부고를 알렸다. 친한 동료와 후배 몇 사람 정도에만 알려 상을 치른 후 기관장들로부터 욕(?) 꽤나 먹었지만 그것이 진심인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여기저기 부고를 알려 보조금이나 받아먹을 심상이었다면 그랬겠지만 그것이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그만뒀다. 심지어 내가 먼저 부조한 사람에게까지 알리지 않았다. 물론 상은 상주를 보고 간다고 하지만 평소 어머니 아버지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영정 앞에서 절을 한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됐다. 어머니 아버지도 아마 이런 나의 생각을 이해해 주시지 않았을까...
나는 5만 원권이 처음 나온 2009년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는 축의금과 부의금의 최저 금액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훌쩍 뛰는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5만 원짜리를 두고 대신 1만 원짜리 3장을 봉투에 넣는 건 어딘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게 만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개인들이 5만 원권을 보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조금 용도였다.
한 장 한 장 펼친 축의금 장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3만 원을 낸 것으로 적혀있었다. 30년 전의 금액이 고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이는 아마도 축의금을 내는 사람들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으리라... 그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갔다. 우리 집에는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어 여러 번 축의금을 낼 이유가 없을 것으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면 그 금액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더구나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는 집의 경우 이미 몇 차례 부모님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리라 짐작을 해 봤다.
경조금은 폐쇄적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상호부조 시스템이다. 이탈이 적고 이웃의 숟가락 수까지 꿰고 사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쌀, 포목 등 현물로 낸 축의금은 시간이 지나도 손실 없이 고스란히 돌아올 공산이 컸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이동성이 커지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이런 틀이 깨졌다.
화폐로 내는 축의금에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있다. 내가 겪은 바로는 1990년대 초반 1만, 2만, 3만 원,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2만, 3만, 5만 원, 2000년대 중반 이후 3만, 5만, 10만 원이던 축의금은 현재 5만, 10만, 20만 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10여 년 만에 최저 등급의 면피성 축의금이 70%가량이나 올랐다. 호텔 결혼식 등으로 일반 물가보다 가파르게 오른 결혼 비용이 반영된 탓이다.
부의금과는 달리 축의금은 계산이 어렵다. 우리 집의 예를 들었지만 집집마다 자녀수가 달라서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 어른들은 다른 집 ‘개혼(開婚)’, 즉 형제 중 첫 번째 결혼 때 축의금을 제일 많이 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에는 금액을 낮추었다. 하지만 이혼, 재혼이 빠르게 늘면서 셈법이 난해해졌다. 다른 집 자녀가 재혼할 때 초혼 때와 같은 축의금을 내야 할지, 줄인다면 얼마나 적게 내야 할지 마땅한 기준이 없다.
최근에는 반대로 자녀의 결혼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는 자녀가 있을 경우 부모들은 축의금을 회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머지않은 장래에 몇몇 선진국들처럼 동성결혼까지 허용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더 심각한 것은 청년들의 ‘비혼 선언’이다. 아예 비혼 선언을 하고 축의금을 돌려받으려는 청년들도 있다고 한다. 이는 가족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주겠지만 국가적으로도 난감한 일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결혼을 하겠다는 청년들을 보면 반가운 일이다.
책상에 쌓여가는 청첩장을 보면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다가도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다.
결혼조차 힘겨운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축의금을 준비한다. 빳빳한 5만 원권 새 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