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려움

남자들이 여자를 두려워하는 세상, 미래가 암울하다

by 연오랑

나는 한 때 여자가 무서웠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인데 무섭다니...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60년대 베이비 붐 세대였지만 외아들로 태어나 주위에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집에 사는 누나를 나는 어떻게 부를지 몰라 ‘언니야’라고 부르며 자랐다. 그 호칭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알았으나 여전히 나는 그 ‘언니야’가 결혼을 할 때까지 그렇게 불렀다. 그 후에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서로 편해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에도 불구하며 고유명사처럼 불렀다.

그 ‘언니야’는 내가 대학교에 진학해 주위에 여학생들이 몰릴 때까지 유일한 여자였다.

남녀 공학이 시행되지 않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온통 남자들 뿐이었으니 여학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저녁이면 내 베개를 들고 아래채에 사는 ‘언니야’ 방을 찾았다.

그 ‘언니야’는 남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책을 읽어주고 더러우면 씻겨주고 가려우면 등도 긁어줬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6학년이던 ‘언니야’는 매일 함께 등교했으며 글짓기 반에 들어가서는 글짓기까지 가르쳐 줬다.

나도 맛있는 반찬이나 음식이 생기면 반드시 ‘언니야’의 몫을 챙겨두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나와 ‘언니야’를 친남매처럼 여겼다. 이 같은 인연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언니야’ 집이 대구로 이사를 하고 나도 대구 소재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는 미팅을 하거나 소개팅을 하면 나는 꼭 ‘언니야’에게 의논을 하며 자문(?)을 구했다. ‘마마보이’가 아니라 ‘언니야 보이‘였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언니야’가 혼기가 차 결혼을 하고 나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히 ‘언니야’와의 관계는 제자리를 찾았다.

문제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까지도 여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동료들과 여럿 모이면 분위기를 이끌 정도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특히 여자와 1:1로 마주했을 경우에는 한마디로 ‘고양이 앞에 생쥐 꼴’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단점을 보완할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은 신문사를 챙겨 치고 영업전선에 뛰어들고부터였다. 왜냐하면 사무실이던 가정이던 처음 대하는 사람(특히 전화상으로)이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스스로 집중적으로 훈련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화상 부자연스러운 말투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에 착수했다. 방법은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침 미팅이 끝나면 나는 은행에 들러 10원짜리 동전을 한 자루 바꿔 주택가 조용한 공중전화로 향했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내 전용전화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전화번호부가 붙어있어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나는 두 달여 만에 여자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공포에서 벗어나자 나는 여자 고객을 더 잘 공략할 수 있었고 ‘세일즈 스타’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방문판매 나 영업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 브리태니 터회사’의 서울지역 지역장으로 근무한 이후 그리고 ‘월간 세일즈’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여자 영업사원 교육에 달인이 됐다. 모 화장품 방판 여사원 교육에는 1년여 동안 초빙강사로 활동했으며 모 보험회사 모집인과 영업소장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는 인기강사로 대우받았다.

이 모든 일은 여자를 두려워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최근 이미 극복했다고 여겼던 여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슬그머니 다시 찾아왔다.

한 때 미스코리아 담당기자로서 현장을 뛸 때도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감이 실종됐다.

이는 최근 사회의 분위기 변화와 무관 하지 않다. 바로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관련 범죄와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성희롱인지 어디까지가 성추행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일들도 지금의 잣대로 보면 성희롱이 되고 성추행이 된다. 그러니 여자를 만나고 얼굴 대하기가 두렵다.

‘조커 중에 성적인 조커가 가장 재미있고 관심을 끈다’는 속설을 믿어왔던 나 자신의 고정관념도 바꿔야 할 듯하다.

이러다가는 자칫 남자는 남자들대로, 여자는 여자들대로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 날이 오지나 않을까 두렵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서로 잘난 체만 하고 자존심 경쟁을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조금의 하자가 있고, 틈이 있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야 상대방이 들어설 여지가 있는데도 말이다. 요것조것 일일이 간섭하는 부부, 잠자리에서도 체면과 자존심만을 내세우는 부부, 무조건 주도권을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부부는 이제 주변에 흔해졌다.

남녀 사이란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평화가 오고 사랑이 찾아온다.

남자들이 여자를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미래가 암울하다. 모계사회에서도 남자는 존재했다. 다시 돌아오고 있는 모계사회에서도 남자는 존재해야 한다.

너무 과도한 성희롱(성폭력은 엄단)에 대한 법률적 간섭보다는 남녀 자율의 범주에 남겨둬야 한다.

여자를 두려워하는 일, 나 혼자만의 고민이며 넋두리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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