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삶은 곧 수필이다

수필은 향상 삶의 곁에 있다

by 연오랑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때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돌아본다면 좋은 글이 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 약간이라도 보태거나 빼면 그만 글은 일그러지거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넋두리가 되고 만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는 더욱더 하다. 글을 남기고 싶은 욕심에 서술이 길어지고 미사여구가 많아지며 형용사의 쓰임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내가 택한 직업이 기자(記者)인 만큼, 또 30년 이상 사실과 행위에 대한 글에 익숙한 만큼

아름다운 내용보다는 죽고, 다치고, 교도소에 간 이야기를 전할 때가 많아 마음을 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스스로와 대화를 해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역시 기자의 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어젯밤에 엄마가 행주로 닦아 놓았나? 아침 하늘은 티 없이 맑다”

이 문장은 내가 기자로서 처음 박스기사를 쓸 때 기사의 첫 문장으로 선택한 글귀다.

시골 초등학교의 마지막 운동회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한 박스기사였는데 데스크로부터 엄청 혼이 났다. 기사는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아무리 박스 거리이며 읽을거리 기사라 하더라도 너무 감정에 치우쳤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한구석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내가 느낀 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팩트를 먹고사는 기자라는 직업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사를 쓰는 가운데서도 문학적인 글귀에 목말라 있었다. 나의 기사는 두 눈을 닦고 보아도 오로지 사실을 전하는 것일 뿐 기사가 상대방의 가슴속에 감동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글이 두고두고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향기로 남을 순 없을까? 지순한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연인들의 이야기, 평생 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들 이야기, 가난했지만 떳떳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쓸 수는 없을 까? 고민했지만,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수필이 있었다.

간간히 시도는 있었다. 언젠가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겠지, 한 두 줄만 읽어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살아있는 글을 수 있겠지 고대했지만 이는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로 바꾸는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이 또한 원대한 포부나 찬란한 꿈을 지니지 않고 욕심으로부터 초탈한 마음을 가진 뒤에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데서 온 무지였다.

이제 환경이 바뀌고 내 몸 상태가 바뀐 뒤에야 어렴풋이 짐 작을 할 수 있게 됐다.

수필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향상 삶의 곁에 있다는 것을...

쉰을 넘긴 지금에서야 수필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맑은 거울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진솔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는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솔직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삶은 수필이요, 수필이 곧 삶이기에 오늘도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참이다.

수필은 그래서 삶의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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