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우리 동네 태풍
태풍이 우리 동네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내고 지나갔다
일기예보에는 태풍이 제주도 남쪽 100킬로미터 남쪽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분홍색 옷을 입었던 기상캐스터는 어느새 우산을 든 체 파란색 비 옷으로 갈아입었다.
태풍은 여러 사람을 바쁘게 한다. 비가 와 비설거지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설거지야 마당에 펴진 멍석을 말아 치우고 늘어놓은 고추가 비에 젖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면된다.게다가 걷기가 싫으면 비닐 포장지로 덮어 버리면 그만이다. 마당 한편의 개 밥그릇은 집안으로 치우고 앙숙인 고양이 밥그릇은 엎어 버리면 된다. 비를 싫어하는 고양이가 제 밥그릇을 엎기도 전에 피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원망을 들을 일도 없다. 비설거지는 한마디로 게으른 내게 운동을 부르는 좋은 일감에 불과하다.
하지만 태풍이 오면 경우가 달라진다. 배수로를 돌보아야 하고 비닐하우스도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끈으로 단단히 조여 매야 한다. 텃밭에 고추라도 몇 포기 심었으면 대나무 지지대를 세워줘야 한다. 또한 허술하게 지은 창고 지붕에 큰 돌을 올려놓아야 하고 아직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어린나무는 단단히 동여매야 한다. 농작물도 창고나 방으로 옮겨 비에 젖는 일을 막아야 한다. 한마디로 한두 가지 일이 아니다.
몇 해 전 우리 동네에도 물난리가 났다. 이웃 동네에 비하면 피해도 아니지만 피해는 피해다. 동네 앞을 흐르던 냇가 주변 논과 밭이 쑥대밭이 됐다. 배추를 심었던 이 씨의 밭은 자갈밭으로 변했고 해마다 가정 먼저 추수를 하던 하 씨의 논의 벼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세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뒤편 박 씨 집의 담장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허물어져 몰골이 사납다. 무엇보다도 큰 피해는 동네 사당 주변 키 큰 소나무 가지가 여러 군데 찢어져 어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태풍은 우리 동네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내고 지나갔다.
물론 태풍이 오면 우리 동네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옆집 할머니다. 욕심쟁이인 이 안강댁 할머니는 동네에 빈터만 있으면 먼저가 말뚝을 막는다. 그리곤 온갖 종류의 씨를 일단 뿌려 놓고 본다. 이 덕분에 이 할머니는 동네에서 가장 사나운 싸움꾼으로 통한다. 이 동네 사람 치고 이 할머니와 한번쯤 싸워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할머니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다. 귀가 어두워 태풍이 가까이와 바람이 불기 시작되기 전에는 태풍이 오는지 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옆집에 살고 있는 서 씨 할아버지께 임무를 준다. 이 할아버지는 귀가 연세에 비해 밝아 음악 듣기가 취미다. 음악도 온 동네에 다 들리도록 크게 트는 것이 취미다. 간혹 새댁들이 시끄럽다고 항의를 하지만 그때뿐이다. 비록 부부는 아니지만 이 두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런 면에서는 서로 찰떡궁합이며 공생관계에 있다.
그런데 지난해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술을 좋아하던 할아버지는 평소 당뇨가 있는 데다 폐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동네에서 단체관광을 갈 예정이었으나 관광버스가 도착해 있는데도 나타나지 않아 방문을 열어보니 잠을 자듯 반듯한 자세로 돌아간가신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뇌출혈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 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그러자 단체 관광은커녕 자식도 없고 가까운 일가친척도 없는 할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일이 동네의 큰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이장 아저씨는 동네에서 좀 형편이 나은 집을 돌며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두었으나 상을 치르기에는 태부족이었다.
그날 저녁이 되자 동네 어귀에 1t 화물차 한 대가 물건을 가득 싣고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상가 집에 필요한 물건들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곧바로 음식 장만이 이뤄졌고 동네 청년 몇몇이 번갈아 빈소를 지키기 시작했다.
다음날 오전 입관을 하기 위해 장의사가 오고서야 물건을 보낸 주인공이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귀머거리 할머니였다. 부랴부랴 이장님은 그 할머니를 상가 집으로 모셔와 동네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공표했다.
할머니는 그제야 그 같은 사실을 털어놓으며 “영감님이 내 귀 노릇을 몇 년째 해 이제 서야 품삯을 주는 것이야 “하며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이기를 “동네 빈터를 내가 차지해 지금까지 농사지은 세를 내는 거야”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현금 200만 원도 더 내놓았다.
그날 밤 상가에서는 동네 사람 모두가 둘러앉아 그동안 동네 사람들끼리 다퉜던 이야기, 동네 행사에 참여를 잘하지 않던 몇몇 집 사람들의 사과, 매년 어버이날에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 개최 의견,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는 개울 확장과 축대 쌓는 일, 마을 이장에게 주는 모곡 등 동네 현안들이 말끔하게 해결됐다.
물론 그동안 할머니와 크고 작은 실랑이를 벌였던 동네 아주머니들 모두 환하게 웃으면 그동안의 일을 사과했다. 할머니의 훈훈한 인정 덕에 마을의 고민거리들이 한꺼번에 눈 녹 듯 녹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태풍 또한 더 이상 할머니에게는 귀찮고 두려운 존재가 못됐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고 기상캐스터가 요란을 떨어도 할머니의 비설거지는 동네 사람들이 당번을 정해놓고 했다.
모레쯤 태풍이 동해안을 지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바다의 파도를 보니 이번 태풍도 기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태풍이 와도 과거처럼 걱정을 태산같이 하지는 않는다.
할머니의 훈훈하고 따뜻한 인정이 ‘고기압’이 되어 태풍을 다른 곳으로 밀쳐, 비껴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태풍이 전혀 피해를 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리고 피해를 예방하는 조치를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몇 년 전 할머니가 베푼 따뜻한 인정을 떠 올리며 즐겁게 대비할 수 있게 됐다.
태풍은 할머니의 훈훈한 인정과 상계처리되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