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에는 ‘미인을 얻으려면 요리사가 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모 유명 여배우가 요리사이자 외식업 대표와 결혼을 하고부터다. 또한 이 요리사는 모 케이블방송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시청률이 무척 높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아지자 각 방송사마다 ‘먹방’ ‘쿡방’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여기를 돌려도 ‘먹방’ 저기를 돌려도 ‘쿡방’이니 과히 열풍이라 할 만하다. 요리에 별 관심이 없는 나도 몇 번 이 요리사가 출현하는 프로를 봤지만 재미는 있어 보였다. 다만 이 프로를 보다 보면 문득 큰 걱정거리도 생긴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에서 요리사는 설탕을 너무 많이 시용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요리사가 출현한 케이블 방송사의 모기업이 설탕을 만드는 회사인 점이 어느 정도 프로그램에 반영된 느낌이지만 당뇨병을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번은 고2인 막내딸이 이 프로그램 요리사의 레시피라며 만들어주는 통조림 꽁치 튀김을 맛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50여 년 전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 요리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나의 외갓집은 포항 동해 마산리로 영일만 안쪽에 위치한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시장이 있는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3번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야 다 다랄 수 있었다. 그러니 시장을 보는 일은 명절 이외에는 엄두에도 못 내는 그런 환경이었다.
이런 오지다 보니 외갓집에는 항상 예고 없이 찾아가게 됐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먼저 연락을 하고 찾아가는 일은 불가능했고 혹시 가는 인편이 있으면 그때서야 기별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척이나 바빠지셨다. 비록 외손주(자)지만 하나뿐인 손주(우리 어머니가 맡딸이라)가 왔으니, 게다가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손주가 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반찬 걱정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내가 도착하면 할머니는 우선 방아를 찧으셨다. 동네에 하나뿐인 디딜방아를 찧으시며 동네 사람들에게 손주가 왔노라고 은근히 자랑을 하셨다. 나도 매번 그 디딜방아가 신기하고 재미도 있어 할머니를 겨우 졸라 디딜방아의 한쪽 다리를 밟으며 낑낑거리던 때가 떠오른다.
할아버지도 덩달아 바빠지셨다. 해산물 반찬을 주로 장만하는 할머니와는 반대로 할아버지는 닭을 잡고 겨울에는 꿩과 토끼를 잡아 고기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시장을 본 것도 아닌데, 마트에 배달을 시킨 것도 아닌데 저녁상 반찬은 늘 한 상 가득할 정도로 푸짐했다.
외할머니가 반찬을 준비하는 과정이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우선 할머니는 ‘하선대’가 저만치 보이는 집 앞 바닷가로 나가신다. 갯바위에서 홍합을 따고 파래와 김, 청각, 진저리, 톳, 때로는 우뭇가사리 등 해초를 딴다. 미역은 미역돌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관계로 소나무 가지를 잘라 만든 (오징어 바늘처럼 생긴) 걸개를 던져 바다에 떠다니는 미역과 때로는 청각을 건져낸다. 생선은 폐그물로 만든 생선 건조대에 항상 말려둔다. 밤이 되면 간식거리로 홍합을 삶아주시거나 고구마와 감자, 알밤을 구워주신다.
조리도구는 또 어떠한가? 부엌 중앙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떼 밥을 짓는다. 나물과 해산물은 맡은 편에 걸린 작은 솥으로 끓이고 볶는다. 생선은 아궁이 숯불에 굽거나 화덕에 굽는다. 요즘 압력밥솥이나 가스레인지, 오븐레인지, 인덕션 쿠커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아마 지금은 그렇게 음식을 장만하라면 주부들은 10리 밖으로 도망가 전어를 굽는 냄새가 나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영일만 바다는 식재료의 보고(寶庫)이다. 동해안 영일만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없을 듯 보이지만 분명히 차는 있다. 바다가 잠잠한 날 물이 빠지면 숨었던 갯바위가 나타나 품고 있던 갖가지 해산물을 내어준다. 홍합과 따개비는 물론 미역과 청각, 김 등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간혹 김이나 파래에 미끄러져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으나 이 바위 저 바위를 옮겨 다니며 참게와 숨바꼭질을 벌이던 재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성난 파도가 치는 날에는 갯바위에 매달려있던 해초들이 떨어져 나와 바닷가로 밀려 나오기 시작한다. 조금 높은 곳에서 소나무 걸개를 던지면 미역이며 청각 등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이렇게 건진 미역을 말려두면 정상적으로 바위에서 딴 미역은 상품으로 내다 팔고 이것은 평소 반찬으로 요긴하다.
가장 기대가 되는 날은 외삼촌이 집에 오는 주말이다. 면사무소에 다니던 외삼촌은 수영과 잠수에 고수이다. 물속으로 잠수하면 해녀들보다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외삼촌이 자맥질을 하면 그날 반찬은 진수성찬이다. 해삼이며 전복, 고둥, 성게는 물론 간혹 문어도 잡는다.
코 흘리게 시절부터 바다를 놀이터 삼아 자랐으니 고래도 부러워할 만큼 수영을 잘한다.
외갓집 식구 누구나 잠시 바닷가에만 나가면 먹을 것이 생겼으니 영일만 바다는 식재료를 만들어내는 요술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위 먹방, 쿡방에 나와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혼잣말을 하곤 한다.
“그렇게 좋은 재료에다 온갖 양념과 소스를 사용하는데 맛이 없으면 비정상이지”
사실 그렇다 그 옛날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때의 여건과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할머니는 그 많은 재료를 직접 인근 바닷가와 들과 산에서 구하셨다.
맛을 내기 위한 양념과 조미료는 고사하고 직접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천연양념을 만들어 사용하셨다. 그렇게 만든 반찬으로 까다롭고 별난 외손주의 입맛에 맞췄으니 과연 누가 최고의 요리사인지를 따져 보면 나는 단연 먹방에 나오는 백모 셰프보다 쿡방에 나오는 이모 셰프보다 우리 외할머니가 최고의 셰프라 꼽는다.
명절 때가 되면 난 가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산소를 찾는다. 물론 마산리 뒷산이다. 남들은 영일만 안쪽,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해안절경을 감상하며 달리지만 나는 그때마다 외갓집에 대한 추억을 안고 달린다.
저 멀리 선녀가 하강해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하선대’ 바위가 눈앞에 들어온다. 철이 들 무렵, 혼자 버스를 타고 외갓집으로 갈 때면 내리는 지점을 놓칠세라 외갓집의 이정표로 삼았던 ‘하선대’ 이기에 언제나 보면 반갑다.
데이트에 나선 청춘남녀들은 오늘도 영일만 마산리 해안절경에 취해 드라이버를 즐기겠지만 나는 그 옛날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그 맛깔나는 반찬에 취해, 그 추억에 취해 달린다.
마치 회귀하는 연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