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외로움
외로움은 맨홀에 빠진 것보다 더 위험하다
동네 어귀에서 경광등을 켜고 급하게 달려가는 앰뷸런스와 맞닥뜨렸다. 마을회관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 웅성 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교장선생님으로 부르는 친구 아버님이 목을 메 자살을 한 것을 이웃 아주머니가 발견했다고 했다.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불과 1주일 전쯤에도 골목에서 마주쳐 “친구는 연락이 자주 옵니까?”라며 안부를 물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교장선생님은 “승진을 해서 요즘 바쁜 모양이야”라며 자랑하는 낮 빛이 역력했었다. 그런 양반이 사고도 아니고 자살을 했다니...
상을 치르고 난 후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교장선생님의 자살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을 내놓았다. 사모님께서 3년여 전에 갑자기 병으로 먼저 돌아기시고 혼자 계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마지막 정년퇴직을 한 곳이 이 동네이고 사모님을 마지막으로 보낸 곳도 이곳이니 이곳을 정착지로 택하셨다.
발견된 유서에는 동네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특히 수시로 반찬을 해주던 ‘유 씨 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움은 ’ 여동생 같다 ‘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교장선생님의 외로움은 우리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두 분은 동네에서 단짝이셨다. 같은 홀아비라는 공통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대화가 통한 분이 아버지셨다. 동네 또래 사람들 대부분이 평생 농사를 지은 농부였던 것과는 달리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퇴직을 한 탓에 조직생활의 애환을 아는 한마디로 대화가 통하는 사이였다. 더구나 아들들이 친구였으니 쉽게 흉금을 터놓을 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입원을 해있을 때도 여러 번 병문안을 오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매일 들려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드렸으니 친구의 죽음은 충격을 줬으리라 짐작이 된다. 더군다나 사모님마저 세상을 뜨자 그 허전함과 외로움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었겠는가?
고독과 외로움은 인생에 있어 양념과 같은 존재다. 양념이 과하면 음식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듯 외로움이 과하면 절망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고독이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고독해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고독은 일종의 질병이다. 의학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질병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스스로 격리할 때 찾아오며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더욱 창궐하게 된다. 문제는 자신이 고독에 빠져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고독과 외로움은 맨홀에 빠진 것보다 더 위험하다. 어떤 방법을 쓰던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젊은이의 고독은 얕은 맨홀에 빠진 것이 되고 노인들의 고독은 깊은 맨홀에 빠진 것과 같다. 젊은이들의 경우 쌓아놓은 것도 격은 바도 적으니 빠져나오는 방법도 간단하다. 친구와 소주 한잔이면 족하고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것으로 해결될 때가 많다. 하지만 노인의 고독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노인의 고독은 장기적으로 차곡차곡 쌓인 빙하와 같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우 외로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는데도 서툴다. 치열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직장에 매달리다 갑자기 때로는 준비 없이 퇴직을 하다 보니 여유롭게 취미를 가져본 적도 없고 앞에 주어진 시간적 여유를 활용할 방법도 모른다.
외로움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면역체계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미국 모대학 심리학 교수는 “외로움은 감염을 막는 백혈구의 유전자 발현에 변화를 일으켜 감염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외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백혈구의 '역경에 대한 보존 전사 반응'인 CTRA의 유전자 발현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TRA란 염증반응 유전자의 발현은 증가하는 반면 항바이러스 반응 유전자의 발현은 감소하는 현상이다.
외로움은 신경전달물질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골수 줄기세포를 자극해 면역세포의 일종인 단핵구가 늘어나면서 체내에 염증을 유발한다. 외로움이 심한 노인은 조기사망 위험이 14%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외로움의 의학적 폐해가 밝혀졌으니 사회적으로 치유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노인들 간의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특히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야기 선생님으로 교단에서 거나 숲해설가로 아이들과 야외놀이를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동네에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아쉽고 후회가 된다. 특히 객지에 나가 있는 친구에게 볼 면목이 없다. 동네에서 다시는 이런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래저래 잠 못 드는 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