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7월, 헌법재판소는 ‘김영란 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수년을 끌어 온 판결이 더디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사안들이 모두 합헌 판결을 받았다. 논란을 일단 잠재우고 추후에 보완할 것이 있으면 국회에서 또는 시행령으로 보완하라는 취지다.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고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내게도 눈에 거슬리는 내용은 역시 언론인을 공직자로 보고 공직자와 같은 잣대로 동일 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발상은 이해를 할 수 없다. 언론인이 어찌해서 공직자라는 말인가.
각 직업마다에는 그 직업이 요구하는 도덕성과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기자윤리강령이 있고 또 회사마다 직무규칙이 있다. ‘김영란 법’이 아니더라도 직무와 관련 접대를 받으면 회사로부터도 징계를 받고 더욱더 한 것은 동료 기자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더 알려지면 소위 왕따를 당한다. 공적인 업무 즉 기업이나 단체의 홍보를 위한 자리와 이어지는 접대는 공식적으로 이뤄진다. 대부분 점심시간에 출입기자들 가운데 시간이 나는 기자는 모두 참석토록 한다.
나는 중앙지에도 근무해 보았지만 절반가량을 지방지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지방신문의 근무환경은 열악하다 못해 당장 사표를 내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방지에서는 회사 수익구조상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재를 위한 활동비와 기름 값, 통신비 등은 본인 부담인 경우가 몇몇 지방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다.
돈을 벌기 위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기자 생활을 하라고 하면 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지방지 기자의 상당수는 부인이 맞벌이를 하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출근을 하고 취재에 나서는 것은 일종의 사명감이요 직업의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영란 법이 아니더라도 기자는 충분히 주변으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는다. 출입처 지역 내 어디를 가도 눈에 띄게 마련이요. 얼굴이 알려져 허튼짓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더구나 요즘 독자들과 시민들은 학력 수준이 높아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적인 기사를 쓰거나 세밀한 취재를 않고 쓴 기사에 대해서는 즉시 클레임을 제기한다. 일종의 피드백이다. 더구나 직무와 관련 금품을 수수하고 과도한 접대를 받으면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일선 검사들은 공무원과 기자를 형사 처벌하도록 기소를 유지하고 유죄판결을 받으면 좋은 평점을 받기에 없는 죄도 보태어 처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기자라서 덕을 보는 시대는 옛말이요 요즘은 기자라는 직업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들에게 흔히 적용되는 죄목은 알선수재, 사기, 공갈협박 등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요즘 세상에 지방지 기자에게 뇌물을 주고 목돈을 주는 얼간이는 없다. 취재를 위해 커피숍에서 만나도 기자가 찻값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직무 관련 금품수수는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3만 원, 5만 원, 10만 원은 어느 별 이야긴지 모르겠다. 물론 명절이면 참기름 세트 하나. 지역 특산 술 한병, 생필품 세트 한 개 정도는 오고 가지만 뇌물이라 특별히 볼 만큼 고가의 선물을 주는 이와 곳은 없다.
물론 기자에 따라 특이한(?) 존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지 기자는 순수하고 열정에 넘치는 사람들이다.
‘김영란 법’은 중앙일간지나 방송사 등에서 정치적 야심을 가졌거나 대기업이나 유망단체를 출입처로 하고 있는 일부 기자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공직자와 동일시하고 같이 처벌하려면 그만큼의 처우를 해주던가 아니면 이 법의 적용에서 예외로 하는 것이 옳다.
지방지 기자 대부분을 뇌물이나 받는 일종의 예비 범죄자로 보는 이 법을 과연 지키고 따라야 할지 의문이 든다.
지방지의 지역 담당기자는 한 지역에서 수년 내지는 수십 년 근무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역 사정에 밝고 그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을 주 임무로 한다. 이런 사람에게 명절에 선물을 주고 혹여 약간의 거마비나 촌지를 주는 일을 사시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지역이 사람을 키우 듯 건전한 언론인으로 키우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20여 년 전 007 가방 한가득 현금을 전해주려는 기업인을 봤다. 2,3년 치 월급만큼이나 되는 거금으로 보였으나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만큼 보도가 되면 기업으로서는 타격을 입는 일이지만 시민들의 식수원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 기자는 그 당시 나처럼 누구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다. 판검사는 시험으로 선발하지만 기자는 수년 동안 현장에서 검증된 사람만이 자리를 지킬 수 있고 승진을 해 데스크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적용되는 검찰 세계에서 그것도 검사장이 수백억 원의 돈을 받는 현실에서 누가 누구를 처벌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언론인에 관한 사한은 언론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다.
이제 기자들 세계에서도 ‘더치페이’가 유행할 것 같다. 지금까지 쫌생이로 보인다는 의미에서 꺼려 왔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선배가 후배에게, 지역 유지가 기자에게 격려한다는 의미에서 생맥주 한잔 사는 일도 없게 됐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몰라도 지방도시에서, 인구 10~20만 되는 중소도시에서 기자 노릇 해 먹기가 참 어려워졌다.
어린이집 원장들처럼, 비행장 소음지역 주민들처럼 국가를 향해 소송이라도 벌여 공무원 수준의 임금을 지원을 받아야 할 날이 오지나 않을까 한다. 물론 그 돈을 받는 순간 어용 기자로 전락하겠지만 말이다.
기자를 공무원으로 보고 처벌하겠다. 발상부터가 비민주적이다. 뺨은 어디서 맞고 그 분풀이는 어디다 하려는지, 정치권과 사법기관이 한심하다.
기자의 행동과 영혼이 자유로울 때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고유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된다.
곧 있을 대학동창들의 모임(대부분 언론계 종사자들)에서는 승진했거나 보너스를 두둑이 받은 녀석이 내온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고 회비제를 도입해야겠다. 우리는 참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 이 글은 2016년 8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