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목욕탕 손님

내가 마지막 목욕탕 손님이라는 사실이 즐겁다

by 연오랑

경북 동해안 그중에서도 포항의 겨울은 과메기와 오징어를 말리는 철이다. 구룡포와 호미곶, 동해면 지역은 겨우내 이들을 장만해 말리는 수입이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과연 큰 소득원이다.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양을 장만해 말려야 하니 일손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곳 아낙네들은 평소 한가로이 지내다가도 과메기 철만 되면 바빠진다. 경제적으로 쪼달리는 아낙네들은 물론 여유가 있는 아낙들도 용돈을 벌기 위해 때로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간혹 아이들을 위해 너도나도 과메기 덕장으로 모여든다. 이 겨울은 그 아낙네들의 계절이기도 하다.

내가 참새가 방앗간에 들리듯 매일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동네 어귀의 목욕탕이다. 퇴근을 하면서 들리는 것이 습관화된 내가 들리는 시간은 대략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이 시간이면 목욕탕 주인은 탕 안을 청소하기 시작해 대략 8시 전후면 끝을 내고 문을 닫는다. 새벽같이 문을 열어야 하니 내가 샤워를 하는 시간과 청소 시간이 겹치기 일쑤다. 주인아저씨는 10년 단골손님인 내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부단 노력은 하고 있지만 청소를 하다 보면 물이 튀고 세제물이 흐르게 마련이다.

생각다 못한 아저씨는 그래서 여탕에 손님이 끊기는가를 살폈다가 여탕을 먼저 청소하곤 다. 처음 며칠은 습관적으로 남탕을 먼저 청소하다가 가만히 보니 여탕에 항상 손님이 먼저 끊긴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저씨가 몇 달 전부터는 아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탕을 먼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간혹 사우나실에도 들어갈 수가 있고 뜨거운 물에도 몸을 담글 수 있을 만큼 여유롭게 저녁 목욕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며 아저씨께 인사를 하려는 순간 옥신각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여자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내용을 들어보니 청소시간을 단 몇십 분 만이라도 늦춰주면 안 되느냐는 이야기였다.

다음날 만난 아저씨는 내게 전날 일어난 일에 대해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그 목소리가 큰 아주머니는 한 달여 전부터 이 시간이면 꼭 샤워를 하러 들리는 30대 후반쯤의 젊은 아주머니라고 했다. 여느 여자 손님들처럼 오랜 시간 머물지는 않는데 집에 들어가지 전 반드시 들린다고 했다. 이 아주머니는 낮 시간 동안 바닷가 덕장에서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꽁치를 손질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비린내가 몸에 배어 반드시 샤워를 하고 냄새를 지우고 간다는 것이었다. 아저씨의 짐작에는 아마도 식구들에게 과메기 손질을 하는 일을 하러 다닌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목욕탕 아저씨는 내게 양해를 구하려는 눈치였다. 그러니 내게 그 아주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아주머니가 비린내를 참아가며 덕장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3년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에 소질이 있어 지난해부터는 출전한 대회마다 입상을 해 고등학교도 예술고로 진학시키려 한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렇게 하세요”라고 동의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몇 년 후면 우리 동네 출신의 유명 피아니스트가 탄생하겠구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사실 덕장 하면 내게도 생소한 곳은 아니다. 외갓집에서 어장을 운영한 탓에 덕장의 환경이 낮 설지만은 않다. 더구나 일을 마치고는 목욕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비린내가 심한 지도 안다.

40여 년 전 내 외갓집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오래간만에 외손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은 외할머니는 하루 종일 물을 데우고 목욕을 하고 옷매무시며 머리손질을 하셨다. 어촌마을이라 목욕탕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탓에 가마솥에 물을 데우고 부엌(정지)에서 고무통에다 물을 받아 목욕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비린내가 나는 외할머니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외손자를 비린내 나는 손으로, 몸으로 안고 싶지 않다는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컸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외할머니는 세월이 흘러 병석에 계시면서도 병문안 차 들리는 외손자에게 옷매무시조차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덕장에서 훌륭한 감독관이자 지휘관이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물론 이웃동네 아주머니들의 대소사도 모두 챙기셨다. 그래서 일손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외갓집 덕장은 항상 일하러 오겠다는 아주머니들로 넘쳤다.

오죽했으면 아버지도 장모님 때문에 시골로 장가들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 어머니의 미움을 샀을까.

오늘 퇴근 무렵에도 목욕탕을 들릴 예정이다. 시간에 쫓겨 여유로운 목욕은 못하겠지만 불만은 없다. 열심히 비린내를 지우고 예쁜 딸을 만날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그 옛날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목욕 이상의 힐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마지막 목욕탕 손님이라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 즐겁다.


* 이글은 2016년 1월에 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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