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묘(猫) 부인의 육아일기(3)
은혜 갚은 고양이
새벽 5시쯤 얼굴을 비비는 느낌이 왔다.
마누라가 웬일이야 하고 눈을 뜬 순간 마누라는커녕 고양이 ‘양말이’가 나를 깨우느라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볼을 연신 핥아대는 모양이 배가 많이 고프다는 신호였다.
‘양말이’는 그날 밤 해산을 하고 난 뒤 몸을 추스르자마자 나를 깨운 것이었다.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 이상하다 여겼는데 밤새 새끼를 낳았다.
이번에도 역시 막내 방 옷장 서랍 속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번에는 안방 옷장에서 낳아라”며 통사정을 했건만...
잠결에 본 양말이의 얼굴이었지만 초췌한 모습이 역력했다. 눈을 비비며 얼른 전날 준비해둔 미역국을 한 대접 퍼줬다.
‘양말이’는 미역국 한 그릇을 개 눈 감추듯, 아니 고양이 눈 감추듯 뚝딱 비웠다.
양말이의 4번째 출산은 그렇게 이뤄졌다.
다음날 양말이나 잠깐 외출한 사이 새끼들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1주일가량은 새끼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서랍을 열어보니 새끼는 3마리였다.
배와 입 주위가 흰색 무늬인 것으로 보아 역시 이번에도 새끼의 아빠는 전과는 다른 놈인 것이 확실했다. 초등학교 주변에서 간혹 보이던 흰 고양이와 교배를 한 듯했다.
바람둥이(?) 양말이나 밉지만 그래도 간혹 보이거나 찾아오면 사위 대접(?)은 해줘야 하지는 않을까 싶다.
‘양망이’는 그날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 역시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루 3끼를 먹던 ‘양말이’는 그날 이후 5끼로 늘었다. 젖을 물리느라 그런지 음식 섭취량도 늘었다. 나도 대형마트를 들려 딱딱한 사료를 대신해 부드러운 고양이 통조림과 간식을 한 아름 사 왔다.
마누라는 “내가 해산했을 때는 야근에 출장까지 얼굴도 볼 수 없더니만... ”하는 불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내뱉었지만 집안에서 몸을 푼 ‘양말이’를 홀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양말이’는 내게 구박을 하는 마누라의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다음날 새벽에는 옆에서 잠든 마누라 얼굴을 비비며 밥을 달라며 재촉하는 바람에 은근히 아침밥 수발은 떠넘길 수 있었다.
그런 ‘양말이’의 육아에도 한기지 고민이 있었다. 낮이 되면 집안에 아무도 없어 외출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사람이 있을 때는 창문을 열어 달라, 현관문을 열어 달라, 물을 달라는 등 요구사항이 많지만 출근하고 병원 가고 학교 가고... 저마다 볼일을 보러 나가면 집안은 텅텅 빈다. 세면장에 모래 통을 놓아주어도 절대 볼일을 집안에서 보는 일은 없는 양말 이인 지라 감옥 같은 낮 시간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양말이’는 그 방법을 찾아 제시했다. 양말이가 가리킨 곳은 바로 창문 밑이 2m가 넘는, 낭떠러지인 안방 창문이었다. 도둑이 들어오려면 2m 높이의 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데다 창문 뒤편에 막대기를 받치면 문을 더 이상 열 수 없다. 더욱이 외부로부터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도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양말이’는 그곳을 통해 낮에도 유유히 외출을 자유로이 할 수가 있었다.
새끼들이 눈을 뜨자 ‘양말이’는 어김없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식구들 앞에 새끼들을 한 마리씩 물고 와 선보였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처음 보는 양 ‘양말이’를 쓰다듬어 줬다.
‘양말이’는 그 후 외출이 잦아졌다. 육아에 조금 소홀하는 듯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지난번에 태어난 새끼들의 오빠“소심이‘가 돌보기 때문이다. 지난번 예로 보아
‘소심이’는 수놈인데도 불구하고 누가 동생들을 해칠까 봐 보초를 열심히 서는 등 동생들을 잘 돌본다.
옛말에 ‘자식 터울이 있으면 언니 오빠가 늦게 태어난 동생들을 본다’는 말이 있듯이 ‘양말이’ 가족이 지금 그렇다.
양말이의 행동 패턴을 보면 곧 새끼들을 마당 한구석으로 옮길 듯하다. 그 후 열심히 쥐를 잡아, 때로는 새를 잡아 교육에 나설 것이며 차례로 줄을 세워 동네를 순회할 것이다. 그리고 ‘산청’ 설치에 기꺼이 협조해 준 막내와 우리 식구들에게 옥수수 껍데기며 말린 생선, 때로는 새를 잡아 선물할 것이다.
아니 이번에는 막내가 열심히 눈앞에서 흔들어 보여주며 당부한 ‘5만 원권 지폐’를 물어 올지도 모른다.
‘양말이’와 우리 식구와의 인연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쭉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건강이 시원찮은 내게 ‘양말이’는 또 하나의 ‘힐링’이며 이야기상대이자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