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투석은 마라톤 풀코스 뛰는 만큼 힘들다
난 가끔 “투석환자인데 보기에는 멀쩡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빙긋이 웃고 만다.
10년여째 투석을 받고 있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멀쩡할 수가 다. 볼펜심 굵기의 바늘을 팔뚝 정맥에 꽂는 혈액투석을 1주일에 3번씩, 한 번에 4시간씩 투석을 하니 아무리 체력이 좋은 황우 장사라 해도 버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혹자는 한번 투석이 마라톤 풀코스를 한 번 뛰는 만큼 체력소모가 많고 힘들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혈액투석이란 쉽게 표현라면 전신의 피를 빼내 투석기를 거쳐 투석환자에겐 독소인 인, 칼륨 등을 빼내고 다시 혈관 속으로 집어넣는 일이니 쉬운 일이 아님은 틀림이 없다. 신부전 말기 환자는 콩팥기능을 잃어 이 같은 독소를 걸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4시간의 투석은 1,2 일간 생활할 수 있도록 독소를 투석기로 임시로 걸러주는 일이다. 투석기가 오염된 물을 걸러주는 정수기의 필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면 비슷하다.
멀쩡하다는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보일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잘 모른다.
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 특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는 일에 보낸다.
그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또 생각이 잘 떠오르질 않아, 분위기 전환 삼아,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주변 산책에 나선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작업실을 갖고 싶은 소망이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까지는 로망을 실현하지 못했다.
때문에 누구를 만날 약속을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나와 만났다면 그 사람은 행운이거나 일종의 선택된 사람이다.
나는 약속이 있을 때마다 복싱 선수가 링 위에 오르는 심정으로 준비를 한다. 권투선수에게도 체중이 제일 중요하듯 내게도 체중 조절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난 약속이 정해지면 그 D-day에 맞춰 컨디션 조절에 나선다. 우선 식이관리를 통해 투석 일에 체중이 3kg이 넘지 않도록 한다. 넘으면 후유증으로 힘이 들어 다음날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일까지 수분 섭취를 제한한다. 약속 장소에 나가면 필히 커피 등 음료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또 매끼 조금씩 먹는 식사에서 인이나 칼륨이 많이 든 음식은 삼간다. 외식 음식에는 필연적으로 인이나 칼륨이 많이 든 음식이 많으므로 상대방과 비록 량은 적지만 맛있게 먹으려면 집에서 먹는 음식에서라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난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서 가급적 식사 약속은 잘하지 않는다.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라는 말은 내가 별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다.
대신 커피나 차를 마시는 일로 약속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약속이 정해지면 난 못 먹는 티를 잘 내지는 않는다.
혹자는 투석환자 치고는 음식을 안 가리고 잘 먹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른 음식 철학을 터득했다.
의사들이 이 이 글을 보면 특히 내 주치의가 보면 펄쩍 뛰겠지만 몇몇 음식을 제외하고 내가 가리는 음식은 별로 없다.
가리는 음식은 인이 많이 든 곰국이나 칼륨이 많이 든 바나나, 천도복숭아, 참외와 멜론, 고구마, 늙은 호박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먹는다.
나 같은 경우 섭취하는 음식의 절대량이 적기 때문이다. 적게 먹는 가운데 약간의 인과 칼륨이 든 음식이 섞여 있다고 해도 다음 투석까지는 큰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대신 특정 음식보다는 골고루 조금씩 먹는다.
아마도 의사들이 우려하는 점은 인이나 칼륨이 많이 든 특정 음식을 아무런 생각 없이 많이 먹게 되는 경우일 것이라 여겨진다.
투석을 시작한 지 10년 여가 다 되고 가고 뇌사자 등록을 한지도 8년 3개월째가 돼 가니 ‘멀쩡하다’는 말보다 더 듣고 싶은 말이 생겼다.
바로 “기증자가 나타났으니 수술 준비해서 내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나오세요”라는 수술 통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