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메이드 맨의 무도회(Maidman's ball)

모계사회, 어디까지 왔을까?

by 연오랑


요즘 세상은 여성들 위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바야흐로 모계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과거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직업들이 대거 여자들에게 개방되고 있고, 가정의 경제권은 일찍이 부인들에게 넘어갔다. 사회·경제적 현상에 가장 민감하고 바르게 읽어내는 기업들도 마케팅의 타캣을 주부들로 옮긴지는 벌써 오래됐다.

최근 미혼의 처녀총각들도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결혼을 해도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주도권을 행사한다. 남자를 골라서 결혼하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은 아예 솔로를 선언한 여성들도 많다. 섹스를 신성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한 번의 엔조이로 여기는 여자들도 많다. 슈퍼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섹스파트너를 마음에 드는 남자로 고르고 그것도 몇 번 경험해보고 싫증이 나면 두말 않고 바꿔 버린다. 전자제품보다 더 자주 바꾸는 여자들도 많다. 소위 골드미스들 사이에서는 결혼은 싫고 아이는 갖고 싶다고 주장하는 여자들도 많다.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이갈리아의 세계는 가모장제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의 가부장제에 반대되는 사회와 가족제도를 가진 곳이다. 당연히 상대를 선택하는 권한을 남자가 아닌 여자가 지닌다. 여자는 남자를 골라 섹스를 주도한다.

여기 가모장제를 거부한 한 사내가 있었다. 이갈리아 사람들 눈으로 보면 한심하다 못해 추방돼야 할 놈이다. 하지만 후회를 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일인 만큼, 후회도 미련도 없다. 다만 내가 ‘메이드 맨의 방’이라는 곳에 가서 사랑을 나눈 첫 번 째 남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이갈리아 마을의 언저리를 위태롭게 벗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내게 집사람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아니 몰라야 당연하다. 만약에 알면 쫓겨날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국가기밀에 버금가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총각 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연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모지방 신문에 입사했던 나는 기자라는 명함 한통도 체 쓰기 전에 그만두고 곧바로 대구의 모회사에 취직을 했다. 신입사원 티를 겨우 벗으려 할 즈음 내 앞에 한 아가씨가 나타났다. 그 전날 미국 본사에서 부사장이라는 여자 임원이 대구 사무소를 방문한다는 예고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 사원들에게 새로 개발된 마케팅 교육을 실시할 요랑이었다. 이곳 책임자 방에서 환담을 마친 부사장은 교육을 위해 강당으로 들어섰다. 이제 갓 서른이 넘어 보이는 부사장은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서양미인이었다. 문제는 부사장이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대구사무소에도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영어 통역을 할 수 있는 직원이 있었으나 퇴사하고 말았다.

부사장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대구지역 책임자인 전무님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가 3개월여밖에 안 되는 신입사원인 나로서는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전무님의 비서였던 그녀가 “여기 김 00 씨가 할 수 있습니다”라며 나를 지목했다.

인사기록카드 관리를 담당하던 그녀는 순간 이력서 란에 기록된 나의 토익점수를 떠 올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앞이 노랗게 됐지만 곧 정신을 차려 통역을 시작했다. 새로운 마케팅 방법인 데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가 아닌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어서 인지 그 부사장은 아주 느리게, 쉽게 설명을 했고 나는 그 설명에다 내 나름대로 의견을 보태 설명을 했다. 당시 새로 개발한 마케팅 방법인 스킵, 서드 파티, 프리 드로잉 등이었다.

1시간 반 동안의 교육이 끝나자 며칠간 회사 내에서는 온통 내 이야기뿐이었다. 그 부사장도 돌아가면서 자신보다 더 재미있게 표현해가며 통역한 나에 대해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당시 사내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한 사원들도 몇 명 있었고 미국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귀국한 사람도 있었는데 굳이 내가 선택된 이유를 몰랐다. 아마도 새로운 마케팅 방법이라는 말에 실수를 할까 봐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며칠 후 그 비서 아가씨가 감히 나를 호출했다. 직급이 과장이었으니 호출을 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날은 전무님께서 표창을 한다며 공적조서를 꾸미라는 지시를 하고 외출을 한 만큼 당당히 나를 호출했다.

나는 이력서와 인사기록카드에 적힌 내용보다 신상과 가족관계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취조(?)를 당했다. 한마디로 신상 털기를 당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아가씨로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호출을 당했다. 한마디로 연애 비슷한 것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제의 아가씨에 대해서도 서서히 알게 됐다. 우선 대구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잣집 딸이었다. 오빠만 셋이고 막내딸이었으니 집안에서 이 아가씨를 대하는 태도는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그런 모습이 데이트를 하는 중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데이트 장소를 정하는 일도 그날의 스케줄도 심지어 먹고 마시는 음료와 밥까지 그녀가 정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귀엽게 봐줬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거부감이 생겼다. 한 성질(?) 하는 나로서도 더 이상 참기 힘든 상황이 오고 말았다.

어느 휴일 오전의 일이다. 점심시간에 자기 집 근처에서 점심을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선약이 없던 터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갈 때가 있다고 했다. 바로 그녀의 집이었다. 당황해하는 내게 그녀는 사실 며칠 전부터 부모님께 이야기를 해 약속을 잡은 것이라며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오늘이 아버지 생신날이라 마침 오빠들과 식구들이 와있다고도 했다. 갑자기 이런 일을 벌여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으나 나는 황망하고 당황스러워 앞이 깜깜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아니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황망해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집에서 자꾸 선을 보라고 보채서...”라며 여러 번 변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고분고분한 자세로 내게 사과를 했다. 싹싹 비는 시늉도 했다.

나는 잠시 뒤 이왕 엎질러진 물이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태 수습이 우선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사이 어디까지 말씀을 드렸는지를 확인했다. 그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모조리 다”라는 대답에 그저 쓴웃음만 났다. 나중은 나중 일이고 우선 그녀의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인사를 드리고 상에 앉자마자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왜 신문사는 그만뒀냐는 이야기부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특히 질문은 그녀의 어머니가 집중적으로 했고 오빠들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모두 알고 있다는 표정이 역 역했다. 식사 후에도 오빠들과 한참을 이야기하다 집을 나섰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나는 본사에 전화를 걸어 지난번 통역을 했던 부사장을 찾았다. 처음으로 백(?)을 동원했다. 근무지를 옮겼으면 한다는 말에 두 말도 않고 흔쾌히 승낙을 해줬다. 물론 내가 자원했다는 말은 함구해 줄 것도 아울러 부탁했다.

오후에 인사부서의 전화를 받으니 대전으로 일주일 뒤 날짜로 이동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

내가 밤새 생각해 결론을 내린 이유는 명확했다. 이런 철부지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봤자 평생을 공주님처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처갓집이 부자라는 것도, 인물이 좋다는 것도 내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외동아들인 나로서는 그것보다는 부모님을 잘 모시고 친익척끼리 사이좋게 지내며 훗날에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자를 더 원했다. 그것이 나의 평상시 로망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세상을 향한 자신감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자신감도, 높은 명예를 가질 수는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나는 모질고 당찬 내용의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대전으로 향했다. 곧 나는 그녀를 잊었다.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무도회는 좋아하지만 ‘메이드 맨의 무도회(Maidman's ball)는 왠지 싫었다.

내 인생, 내 청춘은 철저히 나의 것이니까...


*메이드 맨의 무도회(Maidman's ball)):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무도회. 여자는 ‘woman’이 아닌 ‘움 wom’으로 불린다. 남자는 ‘man’이 아닌 ‘맨 움 manwom’으로 불린다. 이갈리아의 세계는 가모장제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의 역할을 여자가 대신하며, 남자들은 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큰 무도회로 움은 마음에 드는 맨 움을 선택하고 그 맨 움과 함께 ‘메이드 맨의 방’이라는 곳에 가서 사랑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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