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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Oct 18. 2022

<주령구> 소프트 외교와 '슬라맛 소르(Selamat

국가 간의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전이다. 의전에는 상대방 국가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 외에 상대 국가원수에 대해서도 존경과 경의를 표함으로써 상대방 국민들에게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외교는 철저히 그 나라의 국력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치러지며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가라 해도 현재의 국력이 후순위에 있으면 뭘 해도 티가 나지 않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외교는 그래서 철저히 국력을 바탕으로 한 안보·경제 외교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외교로 ‘소프트 외교’라는 말이 있다. 기존의 외교와는 달리 문화적 접근을 통해 방문국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외교 전략으로 '소통 외교'로도 불린다. 이는 주로 국가 원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그 부인이나 가족들이 나서거나 동물을 앞세우거나 아니면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내세우기도 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방한 시 우리 전통 음식을 구입하고 판다를 임대하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프트 외교를 시도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당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슬라맛 소르(Selamat sore)'라는 현지어로 인사했다. 이는 말레이어로 오후 인사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말레이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쓰는 오후 인사다. 말레이어의 오후 인사말은 '슬라맛 쁘땅(Selamat petang)'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쓴 '슬라맛 소르'라는 표현은 '슬라맛 소레'라는 인도네시아어 발음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는 아무리 인도네시아어의 뿌리가 말레이어에 있다손 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의 원수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일본말로 인사하는 것과 똑같은, 큰 실수다. 

여기서 외교부와 청와대의 대통령 보좌능력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 공보라인에서 무지해 이런 실수를 했더라도 최소한 대사관 직원 한 명이라도 제대로 기자회견문을 일별(一瞥)했다면 바로 잡아 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표하기 위해, 소프트 외교를 펼치기 위해 시도한 인사말이 우스운 코미디가 됐다. 가뜩이나 이 정부의 외교가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어느 한 나라와도 정상적인 외교적 성과를 못 내고 삐꺽 대고 있는 판에 동남아에서 이런 실수를 했으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하다. 대통령의 심정은 또 어떻겠는가 싶다.

* 이 글은 2019년 3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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