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져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있다. 아니 가벼워지다 못해 너무 노출이 심해 모두들 아프리카 원주민의 옷차림이 되고 있다.
지금은 득도의 경지에 오른 한 스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간혹 곡차도 함께하고 노래방도 동행하던 깨어있는(?) 20년 지기 스님인데 그 스님이 20년 전 탁발수행을 위해 나섰을 때 겪고 느낀 이야기라며 가끔씩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와는 동년배이고 20년 전이라고 해봐야 1995년 경이니 그리 오랜 옛날이야기도 아니어서 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출가하기 전 사춘기를 보낸 스님은 고교시절 주먹이면 주먹, 공부면 공부, 못하는 것이 없는 소위 한 가닥 하던 학생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일진에 해당하던 학생이었는데 같은 학교 여학생은 물론 이웃 여고에까지 소문이 나 쏟아지는 러브 레터만 해도 수십 통에 이르렀다.
출가를 해 15년 만에 속세에 나왔을 때의 이야기이니 그리고 곡차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이니 거짓말을 보태거나 과장할 이유가 없다.
스님이 가장 먼저 찾은 도시는 산사에서 2시간여 거리인 대구였다. 15년 전 그러니까 스님이 출가하기 전 대구에 수년간 산 경험이 있지만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스님이 6개월쯤 다니다만 대학 근처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대학은 아예 이전을 하고 흔적도 없었다. 주택가를 떠올리며 한 바퀴 돌 요량으로 찾았으나 고급 아파트로 변한 터라 스님 신분으로는 출입조차 불가능했다. 3시간여를 돌았으나 물 한 모금 보시를 받지 못했다. 겨우 4시간여 만에 아파트 입구 식당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셨다. 입구에 선 스님에게 물 한 사발을 가져다준 아주머니 말로는 하루에도 3,4명의 스님이 찾는다고 하니 이 짓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때쯤이 되자 저 멀리 시장 입구에 스님 복장을 한 이가 식당을 향해 목탁을 두들기며 정체모를 염불을 외고 있었다. 잠시 후 스님이 다가가 마주치게 되자 그중이 대뜸 “야 저리 가 여기는 내 나우바리야”라고 험악한 안상을 지어 보였다. 스님은 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 공원의 정자에서 하루 밤을 묵은 스님은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스님은 시내 한복판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마침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서 인지 시내 중심가는 온톤 젊은이들 천지였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밝은 표정으로 보아서는 근심이 있어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스님을 난처하게 하는 일들이 생겼다. 바로 시선을 둘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아가씨 아주머니 할 것 없이 모두들 팬티인지 바지인지 모를 짧은 하의에 상의는 허리는 물론 가슴까지 드러낸 옷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스님이 얼굴을 붉히며 긴급히 자리를 떴다.
도심공원 벤치에서 두어 시간 넋을 잃고 앉아있던 스님은 탁발에 나선 지 30시간여 만에 발길을 산사로 돌려야 만 했다. 스님은 그 후로는 탁발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도 20년 전에 느꼈던 혼란을 자주 겪는다고 한다. 산사를 찾아오는 여성 방문객들 중에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야한 옷차림과 진한 화장을 하고 도량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고 한다. 젊은 스님들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자신이 겪은 혼란보다 더한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해 얼굴 마주치기를 피한다고 한다.
스님은 최근 몇 년 전부터 교도소에 교화를 위해 가끔씩 방문한다. 특히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성범죄를 저지 런 죄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불연 듯 이들 탓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지나가는 행인을 보아도, TV나 영화를 보아도, 여성들의 옻 차림이나 행색은 모두들 연예인과 같아서 어지간히 자제심이 강한 남성들이 아니고서는 유혹의 떨치기가 쉽지 않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란다.
하기사 여성들이 하고 다니는 행색을 보면 노출이 과해도 지나치게 과한 것은 사실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시선 둘 때가 없고 혹시라도 시선을 아래로 두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지하철을 타면 아예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는 친구의 말에 수긍이 간다. 교편을 잡고 있는 지인은 버스를 타면 이런 꼴이 우스워 아예 차를 한 대 장만해 끌고 다닌다고 할 정도이다.
속세를 떠난 스님들에게는 최근의 이런 현상들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낮 시간이 아닌 늦은 저녁시간으로 잡았다. 저녁을 함께하고 그 자리에서 곡차를 한잔 하게 되자 또 한 번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그놈의 TV에 관한 것이었다. 가끔씩 출연하는 불교방송을 보기 위해 위성 케이블을 달았는데 여기서 또한 밤만 되면 야한 영화 일색이란다. 채널을 찾다 보면 여기저기서 해괴한 장면과 부딪치게 돼 젊은 스님 얼굴 보기가 만망할 지경이라고 한다.
취기가 올라하는 말이었겠지만 “요즘 대한만국의 남성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나보다 더 도를 닦아야만 온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는 스님의 말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현대는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시청률을 올려야 하고 자극적 이여야 하고 벗겨야 하고 때로는 불륜도 미화해야 한다.
이 시간에도 TV 화면 속에는 걸 그룹 멤버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보다 쳐다보기도 민망한 옷차림으로 엉덩이를 실룩거리기 바쁘다. 아마 다음날 신문 연예면에는 뒤태가 아름답다고 나올 것이다. 스님 말대로 어지간히 도를 닦아도 인내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이러다가 멀쩡한 세상 남자들 모두 도를 닦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곧 산으로 갈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