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숲 이야기-(2) 나무
숲이 키워주는 꿈 이야기
난 나무를 좋아한다. 20,30대에는 미인을 보면 가슴이 설렜지만 몇 년 전부터는 잘 자란 나무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나무들이 운집해 조그마한 숲이라도 이루면 그곳에서 눌러살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누가 사주지 않아도 철 따라 스스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노라면 옷을 사달라며 졸라대는 딸아이들과 비교돼 웃음이 절로 난다. 같은 계절인데도 남쪽에는 이런 나무가 또 북쪽에는 저런 나무가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수만 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나무들의 생명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처음으로 손수 심은 나무는 측백나무였다. 초등학생 때 학교 울타리에다 심다 남은 나무를 한그루 얻어와 마당 한편에 심었는데 해가 다르게 쑥쑥 커, 심은 지 3년 만에 내 키 를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 측백나무를 심은 지 몇 년 되지 않아 해마다 나무가 휘어지도록 많은 감이 열리던 감나무의 꽃이 다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동네 할머니가 집 앞을 지나시다 “측백나무 옆에는 과일나무는 심지 마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그 측백나무는 내가 심은 첫 번째 나무이자 내가 베어버린 첫 번째 나무가 됐다. 왜냐하면 측백나무보다는 해마다 감 따먹는 재미가 솔솔 한 감나무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후일 알게 된 일이지만 측백나무에서 겨울을 난 각종 해충들이 이른 봄철이 되면 모두 과일나무로 옮겨가 나무 잎이며 줄기의 수액을 다 빨아먹어 과일이 커지기도 전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으로 나와 가까워진 나무는 층층나무이다. 30대 초반 요즘 유행하는 세컨하우스 마당 한 편에 심어 놓은 층층나무는 해가 멀다 하고 나뭇가지를 벌여 여름철 큰 그늘을 만들어줬다. 이 나무는 커 갈수록 가지가 층층으로 자라 마치 파라솔과 유사한 모양새를 갖춰 정원에 심기에는 제격인 나무다. 이 나무 밑, 평상에서 자는 낮잠은 항상 꿀맛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은행나무는 내가 중매를 쓴 나무라 정감이 간다. 골목 어귀에 누가 심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은행나무가 수년째 열매를 맺지 않아 내가 그 옆에 한그루를 더 심었다. 일종의 혼례를 올려 준 것이다. 침엽수인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분된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등은 수꽃과 암꽃이 한그루에 핀다. 그래서 모든 나무에 꽃이 피지만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분돼 암나무만 있으면 열매(정확히는 종자)를 맺지 않는다. 만일 가로수를 수나무로 심으면 열매가 떨어진 후 악취를 풍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은행나무는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인간과 가장 닮아 있어 인간과 함께 오래도록 공존하고 있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특히 은행나무 열매는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동물들이 먹지 않아 동물들이 옮길 수 없고 사람만이 그 열매를 먹고 또 그 종자를 퍼트린다.
최근에 나는 참나무 6형제와 힐링에 적합한 나무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우선 산책이나 마을 앞산을 등산할 때마다 나는 이 참나무 녀석이 몇 번째 녀석인지를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면서 걷는다. 참나무 형제들은 상수리, 신갈, 갈참, 졸참, 굴참, 떡갈나무 등 6형제나 돼 형제가 많았던 친구 녀석의 집안을 떠올리게 된다. 쓰임새가 많아 ‘진짜 나무’라는 의미로 ‘참나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친구의 6형제들도 모두 훌륭히 지역사회에 일조하고 있다.
치유에 도움이 되는 나무들에 대해서는 흠뻑 빠져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편백나무나 전나무, 소나무, 삼나무, 구상나무 등은 치유에 도움이 되는 나무들이다. 그래서 피톤치드니 음이온이니 하는 단어는 입에 달고 산다. 현대의학이 치료하지 못하거나 치료가 더딘 원인이, 의사들의 자기 고집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치료에도 창조융합을 적용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내가 생각하는 치유센터는 일단 그곳에 들어오면 정확한 병 상태를 검사하고 진단하는 것은 현대의학이, 그다음부터는 자연식과 숲 치유, 풍욕, 황토를 이용한 세라믹 치유, 원적외선을 이용한 치유, 침과 뜸에 의한 한방치유 등 환자상태에 가장 적합한 치유를 선택해 복합적이고 융합된 치유방법을 찾아 환자의 상태를 개선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다.
숲 치유는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예방하고 면역력을 길러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숲 속에서 나는 각종 임산물은 덤이다.
나무와 숲이 우리 곁으로 보다 가까이 다가왔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최근 읽은 책들 중에는 나무와 숲에 관한 책이 가장 많다. 시가지 가로수며 휴양림, 수목원, 도시 숲, 학교 숲, 마을 숲에 관한 책은 물론 문화재 주변의 나무와 선비들이 사랑한 나무들에 관한 책들도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은 자연에서 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저녁 상위에 놓인 나무 숟가락과 젓가락마저도 어느새 정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