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바위
재환
숨어 있을 줄 알았다
믿고 있던 나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날숨을 쉬며 나타나 줬다
달을 숭배하는 갯바위는 그렇게 가끔씩 내게 얼굴을 내밀었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갯바위는 도회지 촌놈처럼 날 맞았다
바다를 향해 점점이 징검다리를 놓으며 유혹할 때도 있었고
김을 달고 파래를 달아 미끄러지게도 했었다
하지만 깔깔깔 웃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원망해 본 적 없다
태생이 뜨거운 마그마였기 때문일까
가무 짭짭한 피부를 자랑하던 때는 천진난만하기까지 했다
언제부턴가 흰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병자의 모습처럼 변했고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의상이다
푸른 이불 겹겹이 덮고
찰싹찰싹 파도는 애무를 해 보지만
흰 옷은 그대로 상복이 되고 말았다
메마른 사막에 나무를 심듯
바다 갯바위에도 해초를 심어
푸르고 싱싱한 놀이터로 남게 할인 없을까
고래도 춤추고 사람도 춤추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