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숲
재환
태생이 남태평양인 태풍이 비바람을 몰고 왔다
모든 것을 품었던 숲은
그제야 시름을 들고
오줌 눈 동자승처럼 제 몸을 흔들어 키를 키운다
없던 개울물이 생기고
목말라하던 산짐승도 나와 축배를 든다
어느 듯 불구경보다 물 구경을 좋아하게 된 지천명의 나도
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숲을 찾는다
낙수 소리가 메아리 되어 숲을 깨우고
미완의 철학자와 득도를 눈앞에 둔 노스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사색 깊이를 논해 보지만
왠지 숲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 해답을 주지 않는다
짙은 안개가 생채기 난 숲을 가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즈음
난 비가 와 더 궁서체의 단호함을 가진 소나무 숲에서
내 삶의 가쁜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