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연이 있어야 더 맛있다

라면, 그 오묘한 맛에 반했어요

by 연오랑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내가 오랜 시간 좋아하던 음식 중에는 라면이 단연 으뜸이었다. 라면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에 처음 맛보았다. 아버지가 부대에서 군인 아저씨들이 먹는 음식이라며 2,3개가량을 가져오셨는데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내입에 단번에 맞아 라면이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라면이 시골에서는 귀해 쉽게 먹을 수가 없어 아버지께 온갖 아양을 떨며 라면 조달을 읍소했고 아버지는 그때마다 시험 100점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에는 라면이라는 당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나는 학교 축구대표선수로 뽑혀 축구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축구부 담당 선생님께서 새참 간식으로 학교 옆 간이식당에다 라면을 주문해 놓으셨다. 8명의 아이들에게 모두 8개의 라면을 주문해 놓으셨는데 마침 그중에서 2명이 빠졌다. 라면을 처음 먹어보는지 다른 친구들은 선뜻 자기 몫 외에는 더 먹을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잽싸게 내 몫 외에도 1개를 더 먹어치웠다. 식당 아주머니는 물론 친구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음은 물론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그즈음부터 라면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는지 상점에서 라면을 구입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해 초여름쯤의 일이다. 뒷집에 사는 친구 영덕이가 오후 4시쯤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얼굴빛을 보니 영덕이는 아침은 물론 점심도 굶은 것이 분명했다. 영덕이네는 아빠가 5년 전쯤에 돌아기시고 엄마가 공장 기숙사 청소를 하시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가정형편이 어려워 영덕이가 학교에 도시락을 사 가지고 오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운동회나 소풍 때도 자기 엄마가 도시락을 사주는 경우보다 오히려 우리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사주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날도 참고서를 좀 빌려달라며 왔지만 배가 고파 내 간식거리라도 나눠먹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난 문뜩 어제 어머니께서 라면을 1박스 사 오셔서 벽장에 넣어두시는 것이 생각났다. 큰 냄비에 물을 부어 연탄불에 올려놓고 난 후 나는 박스를 뜯어 라면 4개를 꺼냈다. 영덕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야, 왜 그렇게 많이 꺼내?”라고 묻는 질문에 “내가 라면 먹보라는 소문 못 들었니? 나는 먹었다 하면 적어도 3,4개는 먹거든”하며 4개를 다 끓였다. 사실 나도 라면을 2개 이상 먹어본 적이 없었다. 먹고 나면 배속에서 라면이 불어 은근히 배가 불러온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 끓인 라면을 일부러 각자의 그릇에 옮겨 담지 않고 냄비 째 놓고 마주 앉아 퍼 먹기 시작했다. 영덕이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연거푸 라면을 입속으로 가져갔다. 나는 중간에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한번, 연탄불에 뭔가를 올려놨다는 핑계로 한번, 찬밥을 말아먹자며 밥 가지러 간다며 한번, 그렇게 세 번을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라면 4개가 바닥이 났다. 그때서야 영덕이는 미안했는지 “ 내가 다 먹었다 ”하며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겸연쩍어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덕이는 간혹 그때 먹던 라면 이야기를 한다)

한참 먹을 때인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나의 라면 사랑은 절정에 달했다. 1주일에 3,4번은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휴일 날에는 2,3개씩 끓여 면을 건저 먹고는 또 밥을 말아먹을 정도였으니 어머니는 걱정이 앞섰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라면을 먹는 것을 보고 “삼양라면 사장에게 딸이 없나 좀 알아보세요”할 정도였다. 라면을 워낙 좋아하니 라면 만드는 회사 사장 집으로 아예 장가를 보내야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할 정도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자란 탓인지 후에 우지파동을 겪고 있는 그 회사 제품이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나는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지 않고 꾸준히 그 라면을 먹은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나고 군대생활을 할 때도 라면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일병 계급장을 달자마자 서무계로 보직을 받는 바람에 소위 찬밥 보다는 라면이 좋아 배식시간이 지나고 난 후 간부식당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밤중에도 마음에 드는 선임이나 동기가 야간 경계근무를 하고 들어오면 내무반 스팀 위에 물이 없는 일종의 찜라면을 올려놓고 야참을 챙겨주기도 했다. 나 때문에 몇 달도 되지 않아 온 부대에 찜라면이 유행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단속을 해도 근절이 되지 않을 지경이 됐다. 요즘도 군대 동기들을 가끔 만나면 내가 해주던 찜라면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하곤 한다.

무릇 사람에게는 유난히 기억에 남고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특히 그 음식이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추억이 어려 있다면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 내게 라면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사람이던 음식이던 감성이 있어야 오래 기억되고 아름다우며 향기가 있다.

식품을 만들거나 유통하는 회사는 바로 이 감성에 호소하거나 추억을 끄집어내는 마케팅 광고를 한다면 매출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요즘은 라면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딸아이들은 간혹 짬뽕 라면이니 참깨라면이니 하며 슈퍼에 갈 때마다 바꿔 사 오지만 나는 여전히 그 옛날 먹던 그 라면이 지금도 최고다.

어젯밤에도 그 옛날 군대에서 먹던 라면이 생각나 자다 말고 라면을 끓여 먹어봤지만 옛날 그 맛이 아니어서 두 젓가락도 먹지 못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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