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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n 30. 2023

#시가 있는 여름(120) 사시(斜視)

사시(斜視)

    재환

8차선 도로 위가 번잡하다

자동차에서 비추는 라이트불빛보다

거리의 촛불이 한 박자 더 부드럽게 일렁인다

볼록렌즈에서 내뿜고 있는 자동차불빛이 순화되어

군중의 노랫소리와 섞이고

눈곱 낀 내 눈동자엔 희미한 동영상들이 지나간다

무엇을 위해 불을 밝혔을까

오늘과 내일의 경계처럼 불확실한 차선위에 서서

없어질 듯 위태로운 내일을 바라본다

빛 공해 때문에 눈이 혹사당한다고 치부했다 

앞사람의 뒤통수마저 신비로워질 무렵 

오감으로 오늘을 곱씹어도 답은 찾을 길 없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한통의 무전으로

내 손에도 불빛하나 들려있다

완장을 차면 나타나듯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통제봉은 신들린 듯 흔들린다

차동차도 가다 서고, 사람도 걷다 멈춘다

그렇게 머뭇거리든 사이

도저히 멈출 수 없는 한 무리의 촛불이 밀려온다

방관자를 자처하던 나도 그 불타는 촛불 사이에 서 있다

제복으로 겉은 근엄해 보이고 몸은 오른쪽으로 향해 있지만

눌러쓴 모자 아래 가느다란 내 눈의 시선은 왼쪽으로 가 있다 

빛이 굴절된 촛불사이로, 변곡점을 찍은 내 의식도 낯설게 변했다

터벅터벅 아스팔트 중앙을 걸어보려 애는 쓰지만

걸음은 엉뚱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내 눈은 아스팔트 위에서 그렇게 사시(斜視)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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