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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l 05. 2023

#시가 있는 여름(123) 벌물

       벌물

                    재환

수돗가 저수통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노심초사, 소심한 내 마음에서도 매일 샘물은 샘 쏫는다

단지 그 샘물과는 달리 

수돗물은 넘쳐 마당을 수시로 적시고 

저수지는 넘쳐 몽리를 바라는 농부를 만족시키지만

나는 누구를 만족시켜야 할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마치 그렇게 억누르고 자제해야만 

온전한 인간이라도 되는 양 조바심치고 있는 것이 한심할 뿐     

빗물과 홍수에는 여수토를 마련해 주며 아량을 베풀던 아버지도

내게는 그렇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엄격했을까

나는 또 왜 그것을 천명처럼 가슴에 묻고 살았을까?

이 제 곧 올라 올 태풍과 함께 그 조바심도 사라질 터

양동이마다 저수지마다 물은 넘치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양심마저 물처럼 펑펑 낭비하겠지     

흘러가고 싶은 놈은 흘러가고 싶은 대로

고이고 싶은 놈은 고이고 싶은 대로

그저 삽자루를 들고 물꼬를 터 줄 뿐

내 마음속 양심의 샘물만은 

벌물이 되어 너부러지지 않도록

온전함과 넘침의 안타까운 경계를 묵묵히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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