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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l 15. 2023

#시가 있는 여름(119) 청포도

청포도

    재환

나는 네가 희귀해 보물로 여겼다

매일 아침 한알을 따 먹으며 행복했고

한 송이를 뚝 따내는 옆집 아저씨가 미웠다

속을 내 보이며 익는 청포도를 다 따먹을 때까지 

어머니는 포도 한 알 맛보지 못했다

나는 세월이 흘러도 익지 않는 청포도가 이상했다

다른 포도는 앞 다투어 까맣게 익어가고 있는데

어머니의 머리색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는데

청포도는 그대로였다

어느 날 그 청포도는 바늘을 쥔 어머니 손끝에 열렸다

누이의 혼수, 상보에도, 이불보에도 열렸다

아마도 포도 알처럼 많은 손주를

포도 알처럼 파란 꿈을 꾸라는 듯

청포도가 익을 때면 

어머니도

누이도

또 누이가 낳은 조카들도 주렁주렁 생각난다

어느새 어머니의 파란 소망이 송이송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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