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진한 커피 향을 남기고 떠난 여인

사연이 있어 더 짙은 커피 향

by 연오랑

“김기자 님 사망자 휴대폰에 이름이 있어서 혹시나 아는 분인가 싶어서요”

경찰서 교통계 직원의 전화였다. 그 경찰관이 전하는 사고의 주인공은 매일 얼굴을 대하던 사무실 인근 다방의 젊은 마담이었다.

“ 어, 이사한 지가 벌써 두 달이 다돼 가는데...”

폰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연락해 봐도 모른다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가족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에 나는 수긍을 했다. 그녀는 평소 가명을 쓴 데다 가족이라고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남동생 한 명이 유일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경찰관이 사망자와는 어떤 관계냐는 질문에 잠시 난감했지만 곧 나는 “업무상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정의해 줬다. 경찰관의 권유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을 살펴보기로 했다. 가지런히 누워 엷은 미소를 짓는 듯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여자는 분명 내가 아는 “정마담”이었다. 아니 본명은 “김 00”이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기자로 첫 발령을 받은 경주에는 유난히 맛있는 커피를 판매하는 다방이 있었다. 5,6평 되는 넓이에 테이블이라고는 2개다 전부였다. 보아하니 홀에 오는 손님보다는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다방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손님을 사무실로 오라고 하기에는 꺼리는 눈치여서 인근 다방 이름을 일러주며 약속 장소로 정했다. 나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다방이었다.

다방에서는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기름이 섞인 폐수를 강으로 흘러 보낸 공장의 사주가 찾아와 다 자고자”한번 봐 달라 “며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식수원인 강에 폐수를 흘려보낸 것도 괘씸한 일인데 돈 봉투까지 내밀며 매수를 하려는 사장이 나는 악마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기자들은 돈 봉투를 내밀면 대충 넘어가는데 당신은 뭐냐는 표정이 더 얄미웠다.

나는 이런 유의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안다. “돈 봉투는 됐고요. 제가 참작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나는 다음날 신문에 평소보다 더 크게 그리고 기사도 더 매몰차게 내보냈다.

다음날 아침 모닝커피를 시키는 습관이 있는 본부장이 차를 주문했는지 어제 그 다방에서 본 여자가 배달을 왔다. 차를 마시는 내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 여자의 얼굴을 그때서야 찬찬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인이었다. 늘씬한 키에 상가 풀 낀 눈, 조막손만 한 얼굴, 정형적인 미인형이었다. 내가 차를 마시고 나간 후에도 본부장은 그 여자와 두런두런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여자는 전날 다방에서 일어난 일을 본부장에게 소상히 전했다. 특히 돈 봉투를 받지 않는 기자는 다방을 하는 동안 처음 봤다는 말과 함께.

며칠 뒤 사무실 막내인 내가 커피 주문을 전담하다시피 됐다. 매일 아침 회의시간에 차를 한잔씩 하면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 되다시피 한 사무실은 어림잡아도 커피값으로 지출하는 돈이 상당해 보였다. 물론 낮 시간대 사무실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청탁이나 부탁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커피 값을 기자들이 지불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주문은 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나는 그 마담이라는 여자분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일일이 배달을 다닐 것이 아니라 자주 커피를 배달시키는 사무실에는 아예 대형 커피 보온 통을 커피잔과 함께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대략 10잔 정도를 미리 넣어 놓아 필요할 때 수시로 부어 마실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며 나간 마담은 당장 다음날 아침 대형 보온 통을 들고 나타났다. 매일 아침 첫 배달은 직접 방문하고 다음부터는 주문을 할 필요 없이 커피를 부어 마시고 다음날 교체 시에 몇 잔을 마셨다고 밝히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방법을 바꾸자 서로 도움이 됐다. 나는 번거롭게 커피 주문하는 전화를 안 해도 되고 다방 측에서는 배달 아가씨의 시간을 줄여줘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됐다. 더구나 그 마담은 다음날 아침 정산 시에 커피를 부어 준 대가로 커피 값을 상당 부분을 깎아줬다.

배달이 많은 시청 근처라는 특성상 이 방법은 대환영을 받았다. 다방 아가씨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이상 그 방법은 유효했다.

그 마담은 아낀 배달 인건비로 곧바로 커피의 질을 높이기 시작했다.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원두커피 내리는 기계를 장만해 원두커피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인근 다방과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 할 수 있었고 이런 방식으로 대형 커피 보온 통을 놓는 사무실이 100군데도 넘었다.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마담은 나와는 나이차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통하는 데가 많았다.

어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사무실에서 당직을 서며 이것저것 자료를 정리하는 차에 그 마담이 방문했다.

“ 평소 김기자 님 신세를 많이 진 것 같아서... 그리고 덕분에 돈도 많이 번 것 같아...”

손에는 족발이며 순대, 튀김 등 간식거리가 한 보따리 들려있었다. 아니 안주감이 한 보따리였다. 혹시나 싶었는지 다른 가방에는 소주가 3,4병 들어있었다.

퇴근시간을 두어 시간 앞두고 둘은 대작을 시작했다. 소주를 한 병정도 비울 즈음 그 마담은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이며 이름, 장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 심지어 가족사까지... 아마도 친구로 생각됐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됐다.

그중 특이한 점은 양친을 모두 사고로 여윈 마담이 지체장애인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양산 인근의 병원에 장기입원을 시켜놓고 6년째 매달 그 병원비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벌써 당시 돈으로 3억 원에 약간 못 미치는 돈을 저축하고 있었다.

“김기자 님 나 3억 원 채우면 이 장사 그만두려고요, 스무 살 때부터 커피배달 시작했고 25살에 내장사를 시작했으니 이제 지겨울 때도 됐죠,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해야 하고요”

술이 좀 더 들어가자 그녀는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간 있었던 서러움에 감정이 북받치는 듯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불과 2달 전 사무실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본부장에게는 좋은 양주를, 내게는 명품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그리고 답례품이 없어 당황해하는 내게서는 명함 한 장을 달라며 받아갔다.

병원에 다녀온 나는 착잡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내게 가족사를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혈육인 이모를 수소문했다. 이모부가 울산에서 산업용 냉동기기 공장을, 이모는 유명한 일식집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을 되살려 울산의 아는 경찰간부에게 부탁했다.

2시간여 만에 이모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저녁때가 되자 지체장애를 앓고 있다던 남동생도 도착했다. 동생은 오랜 치료기간 때문인지 생각보다 심해 보이 지는 않아 안심이 됐다. 아마도 사고 발생지점으로 보아 동생이 입원하고 있는 양산으로 가는 길에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 이 아닌가 추축 됐다.

다음날 아침 조촐하게 빈소가 꾸려졌다. 영정 속 사진에는 마담이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몇몇 공무원들과 다방 인근 사무실 사장들이 다녀갔다. 이런 일에는 잘 나서지 않는 습성을 가진 공무원들이지만 평소 얼마나 처신을 잘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다방에서 오래 같이 일을 하던 양동생에게 다방을 물려준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 새 마담에게 커피를 맛있게 내려 한통 가져오라고 시켰다.

가져온 커피를 영정 앞에 술 대신 올렸다.

영정 옆 촛불이 내 대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커피 향이 은은히 영정 주위를 감쌌다.

오늘같이 비가 오거나 어디선가 진한 커피 향이 나는 날이면 가끔 그 여인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산, 진한 커피 향을 가진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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