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소위 은퇴라는 것을 했다. 이른 은퇴였다. 남들은 정리해고다, 명예퇴직이다 하지만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은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다.
오랜 객지 생활 끝에 돌아온 집이라 정리할 것이 많았다. 우선 내가 기거하는 안방부터 시작해 서재와 다용도실, 창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만의 아지트인 아래채 다락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을 지은 지가 50여 년이 됐고 집을 지을 당시부터 나의 아지트였으니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며 안사람마저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비밀의 공간이다. 3,4평쯤 되는 이 공간에는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이랑 통지표, 중학교 때 이웃동네 여학생과 주고받던 연애편지, 그리고 학창 시절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과 관련된 각종 물건들을 모아 두고 있었다.
정리가 시작되자 나는 선택을 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익숙한 일이라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우선은 계속 보존해야 할 것과 이 시점에서는 버려야 할 것들을 분류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아마도 며칠이 걸릴 것이라는 각오는 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간간히 멈칫해야 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건 아마도 잘한 일보다는 십중팔구 실수를 하거나 후회가 되는 일이 떠오를 때가 아닌가 한다.
여러 물건 중 중학교 2학년 때 박스를 열었다. 이때는 잠시 미술을 전공해 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결국은 부모님의 반대로 6개월여 만에 생각을 접어야 했다. 그 상자에는 그때 상황을 말해주듯 온통 미술에 관련된 물건들 뿐이었다.
켄트지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미술의 기법을 공부하던 때라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마블링과 데칼코마니 기법의 그림들이 얼굴을 쏙 내밀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을 종이에 흡수시키려 애쓰던 일, 색색의 물감 1통을 접은 켄트지 한쪽에 전부 짜 놓고, 포개면서 나타난 신기한 나비모양의 무늬를 바라보며 신나 하던 일등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때 내가 미술을 전공했으면 내 인생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에는 뉴스보이 캡을 쓰고 콧등에는 물감을 묻히고 다니고 있을까? 마음은 어떨까. 매일매일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될 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그 삶을 오롯이 즐기고 있을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또 다른 삶을 기웃거리기란 이미 늦어 버린 시간이지만 상자 속 물건을 하나둘씩 들었다 놓았다 하는 순간만큼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과거, 그 과거의 미래로 안방을 들락거리듯 하는 순간 상자의 바닥이 거의 보이기 시작했다. 밑바닥 부분에서는 신문지 몇 장이 눈에 띄었다. 온전한 신문지 형태가 아니라 켄트지에 조각조각이 붙여진 신문지라 의아했으나 곧 그 신문지 조각의 정체가 생각났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그리고 선생님에게 호되게 혼이 나며 완성한 작품, 바로 콜라주 기법의 작품이었다.
40년 이상이나 상자 바닥에 갇혀있으면서 햇빛을 못 본 탓인지 색 하나 바래지 않고 신기할 정도로 세월이 비껴가 있었다. 이제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그저 지나간 구문의 조각 정도로 보일 만큼 나도 변했고 세상도 변했지만 자연스럽게 그때의 일들을 회상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우선 당시 미술시간의 일들이 떠올랐다. 신문지와 잡지책이 준비물로 되어 있어 의아해하면서 등굣길에 신문 1부를 구입했지만 설마 이것들이 미술작품의 재료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오히려 선생님으로부터 작품과 콜라주 기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런 것도 미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다가 머리통에 혹이 생길 정도로 꿀밤을 맞던 생각이나 웃음이 났다.
지금도 미리 속에 남아있는 콜라주라는 기법은 캔버스와는 이질적인 재료 혹은 신문, 잡지 등 대중매체의 사진이나 기사 등을 오려 붙여 부조리한 충동이나 아이러니한 이미지의 연쇄반응을 노리는 기법이다. 그래픽 디자인 및 광고에 폭넓게 응용되고 있는데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서 특이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콜라주에 쓰인 신문은, 여러 조각들을 모아 보면 1976년 11월의 신문이 틀림없었다. 가장 큼지막한 조각에서는 “제2차 신안 해저유물 발굴 작업 시작‘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내 기억으로는 한 달가량 진행된 발굴 작업에서는 청자 등 유물 1,900여 점이 인양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쪽 귀퉁이 작은 조각에서는 ’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이 당선 직후...”라는 소제목으로 보아 얼마 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선거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가 당선됐음을 짐작케 해주는 기사였다.
그밖에 그 콜라주에는 “코리아게이트 발발, 박동선” “안동 다목적 댐 완공” “안산 반월 공업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 “북괴 8.18 도끼만행 사건 저질러” “로봇 태권 V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과 종로 세기극장에서 동시 개봉” “몬트리올 올림픽 개막” 등의 기사가 군데군데 보였다. 한편 내가 준비한 신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가져와 한 조각 얻어 붙인 신문에는 “울릉도 대화퇴어장에 폭풍, 오징어잡이 어선 승광호, 금성호 등 어선 45척 침몰, 총 408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발생”이라는 안타가운 소식도 실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콜라주는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었다. 그 시절, 사람 사는 모습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시대의 민 낮을 보여주는 역사기록물이기도 했다.
다음 켄트지에 보이는 콜라주는 보기 드문 칼라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기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진은 유명 연예인의 사진이다. 활짝 웃는 사진이었으나 내용은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대마초 사건으로 연예인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는데 그 연예인이 제일 유명해 대표적으로 사진이 실렸다. 파독 간호사들이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사진도 있었다. 독일로 떠나는 간호사들이었는데 마지막으로 파견되는 간호사들이라는 설명이 한족 귀퉁이에 보인다.
콜라주에는 여러 사람의 인생이 옮겨져 있다. 작품을 만들 당시에는 무언가에 쫓겨 앞뒤 좌우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은 사람의 인생이나 같다. 또 콜라주는 역사책을 엮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역사는 현재는 촌각이고 단순한 사실이지만 시간이라는 물감이 덧칠되면 그것은 오롯이 역사가 된다.
상자의 뚜껑을 닫는 순간 나의 인생도 콜라주가 되어 오브 랩 된다. 참 바쁘고 치열하게 산 삶이다. 수습기자 시절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달렸고 사회부든 정치부든 심지어 문화부에 근무할 때도 나는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을 했다. 퇴근 후에도 회사나 상사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꾸준히 해 왔다. 취재원과 제보자를 관리하고 심지어 긴요한 기관이나 단체에는 정보원까지 두며 앞만 보며 달렸다. 그래서 특종이라는 것도 도맡아 놓고 했고 지역사회에 높은 반향을 일으키는 기획기사들도 꾸준히 써 왔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광고 수주와 부대사업을 엮어 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열일을 해왔다. 그런 까닭에 40대 중반의 나이에 기자의 꽃 인 편집국장이라는 자리에 올랐어도 누구 하나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고 당연시했다. 남들보다 족히 10여 년은 빠른 진급이었다.
내 인생을 콜라주로 엮어 보라면 나는 결코 좋은 일, 잘한 일 그리고 보람 있는 일만으로 엮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적이고, 질투하며 경쟁하던 모습도, 가족보다는 일에 파묻혀 가정의 일을 등한시하던 일이며, 특종에 미쳐 정보원을 매수하던 일이며 때로는 억울한 이의 편에 서지 못하고 시류를 쫒던 일도 과감히 오려 붙일 것이다.
상자 속 콜라주가 살인자의 모습을 담고, 끔찍한 사고 순간을 담고, 위대한 승리, 발견을 담아 지금 빛을 발하듯이 내 인생의 콜라주 역시 민 낮을 담아 나의 온전한 삶의 백화점이 되도록 할 것이다.
지천명(知天命)이 되어 치열하게 산 인생을 되돌아보면, 사람의 인생 자체가 콜라주라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삶을 더 다잡아 보게 된다.
* 이 글은 2015년 봄어느날 쓴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