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40/70mmHg
귀하의 평균 혈압은 알고 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목표를 가지고 산다. 고3 수험생에게는 수능 목표 점수가 있고, 달리기 운동선수에게는 목표 기록이, 역도 선수에게는 목표로 하는 무게가 있다. 물론 그 목표가 단숨에 달성된다면 좋겠으나 단숨에 달성된다면 그건 목표가 아니다.
혹자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년을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 또 누구는 한 번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수도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여 목표를 달성한 이 들에게는 찬사와 영광이 뒤따른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건네기도 한다.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약간 엉뚱한 목표가 하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다른 사람은 좀처럼 걸리지 않는 콩팥 병에 걸렸다. 그래서 일주일에 3회씩 꼬박꼬박 혈액투석을 받아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일단 투석기 옆에 누우면 꼬박 4시간을 투석받아야 약간의 신장 기능을 회복해 하루나 이틀쯤을 생활할 수 있다.
투석실에 들어서면 우선 많은 환자와 간호사들을 만난다. 대부분 60,70대 이상인 환자들의 표정은 어둡다.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아 놓은 죄수들처럼 희망이 없어서 이다. 게 중에 나처럼 50대 젊은 환자들은 뇌사자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산다. 무기징역이나 사형 선고를 받은 노인들보다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5,6년 정도 일종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들인데 뇌사자 장기이식 신청을 해 놓으면 대략 5,6년 정도 기다리면 순서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인공신장실에 들어오면 누구든 주치의로부터 목표치를 부여받는다. 바로 혈압 수치다.
환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대부분 수축기 혈압 140mmHg, 이완기 혈압 70mmHg이라는 목표치를 지상 최고의 목표로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 목표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 목표치에서 조금 높아지는 것은 쉽게 처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목표치에서 급격히 낮아져 수축기 혈압이 70 미만으로 떨어지면 바로 문제가 발생한다. 저혈압 쇼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바로 이런 저혈압 쇼크 징후를 발견해 내기 위해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1시간 간격으로 수시로 혈압을 체크하곤 한다.
내가 투석을 받은 지 1년쯤 됐을 때의 일이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 환자가 한 분 계셨는데 이 할머니는 혈압이 늘 100을 넘지 못한다. 침상 아래 부분을 들어 올려 임시조치를 하지만 투석시간 중 자주 저혈압 쇼크에 빠지곤 했다. 그날은 시작 1시간도 안 돼 저혈압 쇼크가 찾아왔고 응급처지도 안 들어 중환자실로 직행했다. 그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그 후 모습을 뵐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를 비롯해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몇몇의 환자들은 더욱 긴장돼 혈압관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제 투석을 받은 지 어언 4년이 되어간다. 혈압관리 정도는 기본이라 여겨왔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혈압관리다. 우선 음식관리를 잘해야 한다. 짠 음식을 줄이고 무엇보다도 수분 섭취를 줄여야 혈압을 잘 관리할 수 있다.
수분 섭취가 많아 체중이 늘어나면 당연히 혈압이 상승한다.
체중을 100g 단위로 체크를 하며 관리를 하는 것도 결국은 혈압 때문이니 그 중요성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늘도 내 침상 앞뒤, 좌우에서 잰 혈압 수치를 불러주는 간호사들의 소리가 들린다.
이 씨는 160/80이란다. 어제 몰래 좋아하는 소주를 한 잔 한 듯하다.
최 씨 할머니의 혈압은 위험 수준이다. 그 식탐을 자제하지 못해 좋아하는 인절미랑 과일을 잔뜩 드신 모양이다.
건너편 김 씨 아저씨는 140/70으로 오늘도 성적이 제일 좋다. 참으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신 분이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오늘도 간호사의 표정이 어둡다. 160/80이 나왔다. 목표 설정치를 한참 벗어났다. 혈압이 올라갈 별다른 이유가 있거나 생활 패턴에 변화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2시간여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결과 내 병이 도진 것으로 결론 내렸다. 바로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버릇이다.
그랬다. 나를 4년여간 돌보던 주치의가 최근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대신 젊은 여의사가 새로운 주치의 됐다. 간호사도 바뀌었다. 친구같이 동생같이 편안히 여겨지던 베테랑 간호사 대신 이제 갓 간호대학을 졸업한 앳된 간호사가 바늘로 팔뚝을 찌른다. 혈압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10여 명이 넘는 신참 간호사들로 바뀔 때마다 겪는 현상이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선임 간호사의 눈길이 더 밉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 역한 신출내기 간호사의 표정을 보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도 없다. 다만 빨리 숙달되기만 바랄 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내 혈압도 서서히 목표치에 근접해 갈 것이다. 새 주치의도 신참 간호사도 온 신경을 쓰며 140/70의 내 목표혈압에 맞추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꿈결이었을까? 조금 전 간호사의 밝은 목소리가 맥놀이가 되어 들렸다.
김경엽 님 140에 70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