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교장선생님

선생님 사랑합니다

by 연오랑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학창 시절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좀처럼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 대상이 성장하는데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준 스승이라면 더욱더 하다.

어느 날 내가 투석을 받고 있는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 한 분이 계셨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했다. 앞에 보이는 그 노인은 내가 중학교 시절 교장선생님과 너무 닮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교장선생님은 만약에 살아 계시다면 지금쯤은 연세가 아흔이 넘었을 나이다. 물론 100세 시대에 아흔이 넘어서까지 살아 계시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확률적으로 희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노인은 교장선생님이 분명해 보였다. 얼른 달려가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40여 년의 세월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나는 유심히 그 노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기실과 환자 식당에서 지켜본 그 노인은 옛날 그대로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환자들에게 하대하는 경우가 없었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서도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손수 식판을 들고 다니셨다. 더욱 놀라운 일은 집과 병원까지 왕래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다니시는 듯했다. 간호사와 주치의를 대할 때도 깍듯이 대했다. 누가 보아도 노신사였다.

교장 선생님은 한마디로 멋쟁이셨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항상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고 학생들을 대할 때도 항상 웃는 얼굴이셨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2년여 동안 한 번도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 위엄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교장선생님과 나의 첫 인연은 나의 위험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과학시간의 일이다. 나는 전 시간에 배운 염화나트륨을 전기 분해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염화나트륨을 전기 분해하면 염소와 나트륨으로 분리가 된다. 두 원소 중 문제가 된 것은 당연히 나트륨이었다. 전기 분해해 추출된 나트륨은 물을 만나면 엄청난 폭발력 때문에 반드시 석유 속에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얼마만큼의 폭발력이 생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점심시간도 줄여 일찍 실험실로 들어섰고 나 홀로 전기분해를 시작해 나트륨을 추출했다. 아마도 당시로는 지금의 북한 정권이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을 추출하는 일 못지않은 일이었다.

나는 20여분 만에 완전범죄(?)에 성공했다. 나는 그 나트륨을 석유 속에 보관해 2층 교실로 운반했다. 2층 교실에서 내다본 운동장에는 아침부터 비가 온 탓인지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나는 통속에서 꺼낸 나트륨을 아무 망설임 없이 냅다 내 던졌다.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학교는 난리가 났다. 전교생이 운동장 쪽을 쳐다보며 우왕좌왕했고 선생님들도 식사를 하다 말고 모두 뛰쳐나오셨다. 교장선생님도 어느새 2층 우리 교실까지 달려오셨다. 잠시 후 경찰차와 소방차, 앰뷸런스가 순서대로 출동하는 소리가 창밖에 들렸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긴급 체포(?)돼 교무실로 압송됐다.

드디어 교무실에서는 선생님과 경찰, 소방서의 합동심문이 시작됐다. 심문이 시작되자마자 이번에는 국정원 직원과 보안대 직원이 들이닥쳤다. 합동심문은 생각보다 커졌다. 심문이 끝나자 국정원 직원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기관에서 나와 합동신문을 벌인 예는 없었다며 엄포(?)를 놓고 돌아갔다.

해프닝이었지만 교내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내 귀에 들린 단어는 정학이라는 단어였다. 그리고 부모님 소환, 과학 선생님 경위서 등등이었다. 교무실에서 1시간가량을 꿇어앉아 벌을 서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교장 선생님은 교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나를 쳐다보시곤 교무 선생님을 나무랐다.

“이 학생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벌을 세웁니까”

나는 곧바로 풀려나 교실로 향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국정원과 보안대에서는 나를 강력 처벌하라고 요구했고 교장선생님은 “학생이 실습한 일을 가지고 처벌이라니 당치도 않다”라고 버티셨고 결국 기관원들도 웃으면서 “그놈 나중에 크게 될 놈이니 지켜보세요”라고 하며 철수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교장선생님은 상장을 받으러 교단에 올라갈 때도 복도에서 마주쳐도 “오! 폭탄 전문가, 이봉창 의사! “라고 놀리셨다.

40여 년이 지났으니 교장선생님은 분명 나를 알아보지 못하실 것 같다. 병원에서 몇 번을 마주쳤지만 역시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으로 보아 교장선생님 기억 속에는 40여 년 전 폭탄 투척 사건과 그 주인공을 잊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일은 비록 병들어 초라한 모습이 됐지만 교장선생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교장 선생님 제가 40년 전 운동장에 폭탄을 던진 김 군입니다”

비록 기억을 못 하실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만나면 사소한 심부름이라도 해 드려야 할 것 같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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