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모모 씨 잘 있나요?
조선 초 설중매는 기생이었다. 거들먹거리는 조선 초 선비들에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하는 기생년이라는 핀잔을 듣자 선비들에게 고려조를 섬기던 선비가 이번에는 조선조를 섬기고 있으니 기생을 엄신 여길 처지가 아니라는 따끔한 충고를 할 만큼 지조가 있던 기생이었다. 그런 설중매는 요즘은 없는 것일까?
남녘에서 설중매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이 올 즈음에는 꽃이 피지 않아 꽃이 필 때면 눈이 오지 않아 그래서 고고한 설중매처럼 구경하기가 힘이 든다. 그러므로 남녘의 사내들은 그 볼그스레한 설중매 얼굴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 감히 설중매는 중부 이북지방 사내들이나 호사를 누릴 대상이며 그 매무시를 감상하고 의미를 떠올려볼 일이다.
하지만 남녘 경주에도 홍매화는 있다. 꽃이 아니라 꽃향기가 있는 여인이다. 그 여장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출신지도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다만 지금쯤은 환갑이 다 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여인은 경주시의 한 주택가 어귀 골목에서 선술집을 운영한다. 주머니가 얇고 술을 좋아하는, 정확히 말해 병맥주를 좋아하는 술꾼들이 모이는 주막이니 그 여인은 주모라 부르는 것이 적확하다.
사철 시원한 맥주에 안주는 제철 채소며 해산물 등 맥주 안주로 제격인 로컬푸드들이 등장한다. 안주 값은 별도로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집 단골들은 10년 단골은 보통이다. 단골손님의 면면도 별 바뀌지 않는다. 그중에서는 특히 공무원, 선생님, 기자들이 많다. 하나같이 박봉의 대명사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공무원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이는 아마도 공무원의 처우가 개선돼 이제는 선술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이 집은 단골 술집 자랑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급 룸살롱이 부럽지 않아 나는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도 마지막 나의 접대 코스는 이 집이다. 수중에 돈이 없어도 괜찮다. 여태껏 술값을 달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있으면 주면 되고 없으면 낙서가 가득한 벽에다 이름과 금액만 적어 놓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여태껏 이 집 술값을 떼어먹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주모가 술값 계산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조차 모른다.
주모와 나는 1년에 1,2번 정도 대작을 한다. 초겨울에 한번 그리고 겨울이 다 지나갈 즈음에 한번...
일종의 거래가 있는 날이다. 나는 정보를 팔고 주모는 그 보답으로 그 나하게 차려진 술상을 내놓는다. 누가 보면 대단한 밀수나 마약거래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내놓는 정보는 주소가 적힌 쪽지다.
주모가 가장 좋아하고 바라는 정보는 알려지지 않은 불우이웃들에 대한 정보다. 내 직업이 기자인 만큼 많이 돌아다니고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정보는 누구보다도 일찍,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이 시작되면 1년간 파악한 정보를 주고 주모는 그들에게 쌀이며 연탄, 약간의 현금을 몰래 배달시켜 준다. 10여 명이 보통이나 어느 해는 스무 명이 넘는 명단을 건네줬는데도 아무런 내색도 않고 처리하는 것을 보고 여장부임을 느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철석같은 약속을 한지라 입이 간질간질 하지만 그 좋은 기사 감을 묻어두고 있다. 추운 겨울이면 남의 딱한 처지를 돌보는 주모, 일 년 수입의 절반 이상도 더 내놓는 주모, 바로 그녀가 설중매이며 홍매화이다. 올 겨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 이 글은 2010년 12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