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 지휘는 출세의 필수코스
“ 오늘은 뭐 먹지?”
이 말은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흔히 하는 말이자 고민이다. 실로 어떤 메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날 오후 기분은 물론 업무성과까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메뉴를 먹기 위해 다소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같은 지론은 낯선 타지에 처음 발령받아 부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토박이에게 맛있는 음식점을 추천받기도 하고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비아냥인지 부러움 인지는 몰라도 나는 개의치 않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그것도 부하직원들과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80년대 말 외국계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발령이 나자 나는 다음날 곧바로 서울의 맛 집을 찾기 시작했다. 사무실이 충무로 시내 한복판에 있어 점심시간 1시간에다 30여 분만 더 보태면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나의 첫 방문지는 삼각지 국방부 아래편에 위치한 대구탕 골목이었다. 직원 3명과 함께 찾아간 대구탕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미나리를 많이 넣고 즉석에서 끓인 대구를 고추냉이에 찍어 먹고 나중에는 밥까지 볶아 먹으면...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다음으로 개척한 점심메뉴는 광화문 뒷골목의 부대찌개였다. 이 역시 라면을 좋아하는 내게는 금상첨화였다. 그 외 청계천 상가의 생선구이, 종로의 국밥, 연신내역 부근의 감자탕 등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쉬이 잊을 수 없는 음식 들이다.
나의 별스런 점심은 신문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이어졌다. 고급 일식집이나. 요릿집을 싫어하는 나는, 귀한 손님, 특히 외지에서 새로 부임한 기관장이나 기업인들과의 오찬 약속은 그 지역만의 특별한 음식이거나 독특한 음식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음식들은 대부분 값이 싸면서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다. 덕분에 나와 식사를 하면 밥값이 많이 들지 않아 좋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기관장들이 많았다. 직업의 특성상 자주 만나야 고급 정보가 나오고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어 나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기관장들과 점심을 하다 보면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찌개나 전골 등 국물이 있고 들어먹어야 하는 음식을 먹을 때면 항상 국자로 들어주는 성의를 보인다는 점이다. 비단 내가 접대를 받는 입장이거나 기자라는 신분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행동이 이미 몸에 배어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볼 때마다 곰곰이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저러니 출세를 하는구나”로 결론을 내린다.
우리 민족은 ‘밥 먹는’ 일‘에 많이 신경을 쓴다. 어려운 시기, 보릿고개를 맞아 ’ 밥 못 먹은 사람‘이 많았기에 마을 어른과 마주쳐도 ’ 아침 잡수셨어요? “라고 묻는다. 지나가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도 ‘점심 묵었나?”하고 인사한다.
끼니는 그만큼 중요하고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 같은 분위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약속은 식사를 하면서 해야 하고, 밥 대신 차를 마시게 되면 조금 소홀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인식한다.
기관장들과 기업인들은 최근 들어 점심을 중시 여긴다. 저녁은 아무래도 퇴근해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은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법인 카드로 유흥비를 결제할 수 없는 제도 변화도 한몫하는 듯하다.
기관장들의 국자 지휘(?)는 그만큼 상대에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도 된다.
지위가 낮은 부하직원인지 상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부하에게도 스스럼없이 성의를 베풀어야 부하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스스로 존경심이 우러나게 할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아끼는 후배를 오래간만에 만났다. 수습기자 시절부터 가르치고 꾸짖던 후배 녀석이다. 내게 서러움도 많이 받은 친구다. 이 친구가 점심 초대를 했고 십수 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국자를 들고 내 앞 접시에다 듬뿍 담는다.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반드시 출세를 하겠구나... 국자 지휘법을 배웠으니... ”
버스 창밖 저 멀리에는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보인다.
그들은 지금 직장생활의 최고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 직장 상사들이여, 오늘부터 당장 국자를 들고 부하직원의 접시에 음식을 들어줘라.
그래야 더 출세를 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