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추석 차례상이 사라진 이유
“룰루랄라~”
집사람의 입에선 어느새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만 타면 잠을 자던 사람이 오늘은 왠지 포항에서 대전까지 가는 2시간 반 동안이나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사방을 둘러보며 주변 경치를 구경했다.
휴게소마다 들어가 점심도 먹고 간식도 샀다. 하는 행동으로 봐서 누가 봐도 딸아이들보다 더 재잘재잘 거렸고 신이 나 있었다.
차에 오르면서 뿐만 아니다. 집사람은 벌써 며칠 전부터 백화점, 대형할인점, 죽도시장 등지를 다니며 뭔가를 열심히 쇼핑을 하고 다녔다. 평소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짐을 손수 차 트렁크에다 싣고, 운전 중에 잠을 쫓을 커피며 주전부리까지 장만했다.
“소풍 가는 초등학생도 이 같지는 않을 텐데...”
그랬다. 이번 여행은 집사람에게는 26년 만에, 그것도 결혼 후 처음으로 추석날 찾아가는 친정 나들이였다.
벌써 결혼한 지가 26년이 됐다. 결혼이라는 것이 모르는 남녀가 만나 함께 사는 것으로 단순히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5천만 인구 중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남녀가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하필이면 적령기 그 시기에 가까이 살거나, 한 직장에 다니거나, 같은 시기에 적어도 한 곳에 여행을 떠나 거나한 우연이나 인연 정도는 있어야 한다. 아니 그것만으로 결혼이라는 인연을 성명할 수는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서 부부로 만나고 산다는 것은 억만 겁의 세월 속 점들이 모여, ‘인연’이라는 선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혹자들은 ‘필연’이라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도 막상 결혼이라는 대사를 치르기로 결정하고 보니 우연치고는 너무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은 양쪽 집안의 대소사가 겹쳐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아버지의 생신과 장모님의 생신이 같은 날이었다. 어머니의 생신도 장인어른의 생신과 하루 차이었다. 할아버지의 제삿날과 집사람 할머니의 생신날이 겹쳐있는가 하면 먼저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집사람의 외할아버지의 생신날이 겹쳤다. 그러니 시집온 집사람의 입장에서는 친정어머니와 아버지의 생신날이 찾아와도 외할아버지의 칠순잔치가 돌아와도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내가 무녀 독남 외아들이니 누가 시어머니 아버지의 생신날과 조상들의 제사를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매년 전화 한 통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날도 마찬가지다. 차례를 모셔야 하는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온 이상 명절날 집을 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친척들에게 “방문하지 말아 달라”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재작년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자 집사람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명절이면 들리시던 큰외삼촌이 몇 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촌동생들도 차례를 지내야 할 처지가 됐으니 명절이라 해서 친척들이 방문하는 경우도 없거나 줄었다.
바로 이번 추석이 첫 번째 맞는 그런 추석이었다.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날 처갓집 방문을 계획했다. 추석 당일 영천호국원에 모셔져 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뵙는 일로 차례를 대신하기로 했다.
“호국원 참배 후 곧바로 나는 처갓집으로, 당신은 친정으로 출발해!”라는 소리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지만 곧 뛸 듯이 기뻐했다.
그날 밤 집사람은 밤새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는 듯했다.
나 또한 이런저런 생각에 새벽녘이 돼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가 조금만 신경을 섰으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건만 저렇게 기뻐하는 일을 한 번도 못해 줬으니 나의 무심함에 스스로 부끄러워질뿐이었다.
장인 장모님께도 맏사위로 무성의로 일관한 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며칠 후 책상 위에 쓰다만 A4 용지에는 여러 가지 계획이 메모돼 있었다.
‘ 엄마와 외출, 점심식사 예약, 노래방, 치과 방문, 고스톱, 5일장 둘러보기, 대청호 드라이브, 낚시...’
3박 4일 동안 이 많은 것을 다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우려됐지만, 한번 적어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을까를 생각하니 새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용지 말미에 적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자기야 고마워! 사랑해!”
나도 그 옆에 마치 해답을 적듯 이렇게 적어 넣었다
“ 미안해 26년 만에 철이 들어서...”
집사람의 26년 만의 명절 나들이는 그렇게 happy ending로 끝이 났고 벌써 내년 설날을 기다리고 있다.
* 이 글은 2015년 10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