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의자의 용도가 휴식으로 바뀌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이 말은 그 자리에 앉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일단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사람이 달라 보이고 직위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지 어느 조직에서나 승진을 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이 사무실의 책상이요 그에 딸린 의자다.
나 역시도 큰 책상과 의자가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다.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할 때도 나는 의연 중에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 빨리 출세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일이 주어질 때마다 앞만 쳐다보고 달렸고 일중독에 빠져 살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무리하고 욕심을 부린 나의 직장생활의 위기는 쉰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찾아왔다.
나의 직장생활은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요, 전쟁터였다. 성격 탓인지 아니면 큰 책상과 의자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나는 항상 일에 파묻혀 살았다. 대충 해도 될 일을 밤을 지새우며 했고 사람이 재산이라는 신념으로 슬쩍 도망 나와도 될 술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모자라 취한 상사, 선배, 동료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귀가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기사(記事) 욕심도 대단해 내가 맡은 지역인 경북을 한참 벗어나 강원도 양구까지 취재를 나가 그곳에서 특종 거리를 찾아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집사람도 내 성격을 잘 아는 탓에 간간히 주의를 주긴 했으나 극구 만류하지는 못했다.
신장이 망가져 혈액투석을 받아야 할 위기가 찾아왔다. 두 달여를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도 집이거니와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직장이었다.
평 기자 신분도 아닌 편집 국장직에 있다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돼 회사로서도 곤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직무대리 체제로 2개월 이상 운영되고 있었으니 회사로서도 많이 배려를 해 주고 있었다.
나는 퇴원하기가 무섭게 당장 다음날 회사로 달려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신문사의 꽃인 편집국장 자리는 하루라도 비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해 집사람과 동행했다. 책상 정리를 해야 했고 약간의 사물들을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과 인사를 하는 동안 집사람이 내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집사람으로서도 처음으로 와 보는 사무실이었다. 우선 많은 직원 수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내 자리 즉 책상과 의자의 크기와 집무실 분위기에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중앙지에 근무를 하다 신생 지방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회사는 내게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편집국장 직 뿐만 아니라 경영에도 관여하기를 원했고 나는 마치 내가 오너 인양 최선을 다해 신문을 만들고 운영에 힘을 보탰다. 그런 입장이었으니 내 책상과 의자의 수준은 여느 회사의 중역이나 부사장급의 집기를 갖추고 있었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 간의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돌아오는 길 내내 집사람은
말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4시간 꼬박 투석을 받는 생활이 몇 달째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택배 기사가 큰 종이 상자를 앞에 놓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잘못 배달된 물건인가 싶었으나 분명히 수취인 란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주문한 적도 없는데 싶어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내 첫 월급으로 선물하는 거예요. 집에 편안한 의자가 없어 앉아 있기에 불편할 것 같아 하나 샀어요"
그랬다. 내가 건강을 잃어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재택근무로 원고료를 받아 생활하게 되자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집사람은 직장을 잡아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적응이 안 되는지 며칠간 코피를 쏟고 다리에 쥐가 나고 자다가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쩌다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해 놓고 설거지라도 해 놓은 날에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부부가 살면서 어느 한쪽이 일찍 세상을 뜨거나 건강을 잃어버려 상대에게 짐이 된다면 그만큼 미안한 줄 알아야 한다”라는 어느 선배의 말을 떠올리니 나 또한 잠이 오지 않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큼지막한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등받이가 길고 바퀴가 달린, 사무실에서 쓰던 것과 똑같은 의자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사무실에서처럼 당당하게, 힘차게 살아요 우리, 곧 좋은 날이 찾아오지 않겠어요”
내게 의자는 향상 일하는 용도였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의자가 이제는 휴식하는 의자로 그 쓰임새가 바뀌었다. 향상 뭔가에 쫒기 듯 긴장하며 앉았던 의자가 이제는 편안한 안식을 주고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 석양이 물든 창가 의자에 기대어 살포시 잠든 나를 집사람은 부드럽고 따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기가 쑥스러워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창밖에는 하루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 이 글은 2015년 4월에 쓴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