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감

눈빛으로, 말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주고받았다

by 연오랑

꼭 대화를 나눠야 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초점이 없는 눈, 동공이 풀린 눈이었지만 한참이나 무언가를 바라보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의 나이는 마흔이 채 안된 듯 보였으나 그의 눈빛은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의 눈빛과 같이 천진난만해 보였다. 내가 병실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그는 처음으로 정신을 차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동안 그는 본인은 원치 않았겠지만 수면을 유도하는 주사 약물에 의지가 꺾인 체 삶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며칠 동안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걸렀더니 새벽녘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저혈당 쇼크가 찾아왔다. 3년째 심한 당뇨병에 시달려 온 터라 이제는 의사가 다된 집사람이 깨어나 응급처치를 했다. 설탕물과 주스를 입안으로 밀어 넣어 약간 정신이 드는 사이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내과 당직의사가 달려왔다. 첫마디가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병실은 그동안 내가 수시로 드나들었던 병동이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3인실 병실에는 석고상처럼 굳은 그가 반드시 누워 있었다.

침상 머리맡에 걸린 환자카드에 기록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 카드를 살피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났다. 오십이 안 돼 찾아온 내 병도 병이었지만 마흔도 안 돼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그를 쳐다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손등에도 주삿바늘이 하나 꽂혀있긴 했지만 3,4개의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그를 쳐다보니 한숨이 절로 났다.

병실 안에는 죽음보다 더한 고요가 흘렀다.

잠시 후 이것저것을 검사했던 의사가 달려와 내일부터 당장 혈액투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형선고는 아니더라도 무기징역쯤은 선고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잘 먹고 잘 싸야 건강한데 나는 오줌을 잘 싸지 못해 생긴 병이란다.

이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의 콧속으로 연결된 줄에 커다란 주사기로 물을 몇 번 밀어 넣더니 미음 주머니를 연결해 놓고는 사라졌다. 멀건 미음이 그의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 듯 보였다. 아무런 의지도, 의욕도 없는 그의 눈빛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차에 침대 테이블에 갖다 놓은 내 밥도, 국도 다 식어버렸다. 저녁 약을 먹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다시 숟가락을 들었지만 모래를 씹는지 고통을 씹는지 분간이 안됐다.

차가운 미음을 몸속으로 밀어 넣던 그가 언제부터인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눈빛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내게 걸어왔다. 아니 어느새 그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자 그의 눈빛이 환해졌다.

그는 다음날 아침부터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연극배우가 독백을 하듯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를 향해했다. 물론 알아들을 것이라는 기대는 않았지만 그는 간혹 눈을 껌뻑거리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내게 전화가 와 통화를 끝낸 후 하는 이야기에 가장 큰 반응을 보였다.

특히 서울에 있는 아이들이 전화를 해 이것저것 대화를 할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한 번은 둘째 딸아이가 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돌아서자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있던 그의 부인이 그가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탔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부인은 그 자리에서 죽고 그만 이렇게 식물인간이 된 것이었다.

그의 병세는 주기적으로 달랐다. 그의 눈빛은 평일에는 가뭄의 고춧대처럼 시들시들하다가도 아이들이 오는 주말에는 아침부터 까치발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여느 부모들과 진배없었다. 아니 담장 밖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접시꽃이었다.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지만 인기척이 나면 반사적으로 시선이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만나면 안간힘 다해 눈동자를 꿈틀 거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는 그의 눈빛은 더욱 서글퍼졌다. 손 내밀어 잡아 볼 수도. 이름을 불러 볼 수도 없었던 그의 눈빛은 그믐날 어둠같이 어두웠다.

파란 하늘이 드러난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한 손으로 간신히 그의 베개를 들어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주었다. 한동안 하늘을 쳐다보던 그의 눈동자에 갑자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눈동자 끝에는 비행기가 두 줄의 흰 띠를 그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러 날이 흘렀다. 나는 차츰 투석에 적응이 되어 갔고 입맛도 돌아왔다.

병실에 나란히 누워있던 그와의 소통의 통로는 오직 눈빛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웠다. 불편한 것은 육신이지. 우리의 의식이 닫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밤새 세차게 비가 내리더니 아침 녘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둥 화창해졌다. 덩달아 온갖 새들이 찾아와 힘껏 노래를 불렀다. 평소 발라드를 즐겨 부르던 새들도 이날만큼은 나를 청중으로 생각했는지 트로트를 불러줬다.

아침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게 퇴원을 결정했다. 1주일에 세 번 투석은 변함이 없지만 병원 입원만큼은 면하게 해 줬다. 집으로 갈 수 있어 좋았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을 꾸리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견 눈길로 본 그의 눈빛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그 또한 얼마나 가족 곁으로 가고 싶을까를 생각하면 당장 짐 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빛으로나마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겠다고 다가서는 순간 그의 손가락 하나가 움직였다. 그리고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아마도 잘 가라는 그의 인사였으리라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린 눈빛으로, 말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인생 최대 위기의 순간에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순수한 공감을 함께 주고받았다.

* 이 글은 2016년 5월에 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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