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떤 면접시험

One more step!

by 연오랑

한 지역에서 언론인으로 오래 활동하다 보면 간혹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발행하는 연구서나 논집에 원고 청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때로는 강연이나 방송 출연을 의뢰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3년 가까이 출현해 지역소식을 전하곤 했다. 이렇다 보니 흔한 말로 내 뜻과는 달리 ‘스타’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는 TV든 라디오든 방송 출연을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빼앗기는 시간이 많은 데다 내 고유의 일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송 출연을 몇 번 했다고 길거리에서 또는 식당에서 아는 체를 하는 주민들을 만나면 난감한 경우가 있다. 식당이나 선술집에서 오래간만에 긴장을 풀고 술이라도 한잔 하러 들렀다가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주인장이 명백히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평소처럼 나무라거나 큰소리를 칠 수도 없는 경우가 생긴다. 흔히 하는 말로 ‘얼굴이 팔린’ 경우에서 오는 폐단이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 연예인화되는 것이 싫어, 대학 졸업 후에도 방송기자를 꺼렸던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 경우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방송 출연 제의가 오거나 공개 토론 요청이 오면 후배 녀석 중 한 사람을 추천하고 슬쩍 피하는 경우가 많다.

“ 김기자 님 우리 회사 신입사원을 뽑아야 하는데 하루 시간 내 면접 좀 봐주세요”

10여 년 전의 일이다. 지역의 한 중견업체로부터 신입사원 선발을 위한 면접관 의뢰를 받았다.

내게 면접시험을 의뢰한 업체는 경북 동해안 지역에서 성장한 향토기업 중 하나다. 초창기 외식업으로 출발한 이 업체는 30여 년 만에 호텔과 유통업, 놀이시설은 물론 부동산 개발회사, 세라믹 분야 제조업까지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매출 규모 2천억 원대의 중견 그룹이다. 자수성가한 오너가 연세가 들자 몇 년 전부터는 2세인 장남이 그룹을 물려받아 성장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기업이다. 바로 이 기업이 지금까지는 수시·특채로만 사원을 뽑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공채로 전환해 첫 신입사원을 뽑는 그런 상황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대표로부터 의뢰를 받은 것이라 2,3일 밤잠까지 설쳐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무리 평소 나를 잘 봤다고 해도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공채 사원을 뽑는 일을 전적으로 맡기다니 한편으로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기자 출신이 생각하는 안목과 사람 보는 눈이 경영에 관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보다는 더 낫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으로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면접 이틀 전 나는 다시 한번 전화를 해 다짐을 받았다.

“ 이사장님 어떤 인재를 원합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기업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안목이 넓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인재면 됩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면접 당일, 총무과 직원으로부터 설명이 있었다. 오늘 면접 대기자는 모두 54명으로 이들은 1차 서류전형을 통해 선발됐으며 00 대학 출신 2명, 00 대학 출신 6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차 면접에서는 1:1면 접이 그리고 2차 면접은 1: 5로 조를 편성해 치르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설명이 끝나자마자 “면접 방법을 바꾸겠다”라고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A4용지 3장씩과 필기도구를 나눠줄 수 있도록 조치하고 회의실에 집결시킬 것을 지시했다.

예상했던 방식과 달라서인지 총무과 직원도 면접 대기자들도 웅성웅성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강당 전면 칠판에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졌다.

“ 지금 여러분에게 100억 원이라는 현금이 갑자기 생겼습니다.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쓰시오”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시간은 20분을 주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광경을 본 총무과 직원 중 한 사람이 당장 대표에게 보고를 하려는 듯 면접장을 뛰쳐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 직원은 10분도 안 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직원은 이번 면접에 관한 모든 사항을 내게 일임을 한 줄 몰랐던 것이었다.

54명의 면접자들 대부분 열심히 답안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총무과 직원 역시 어떤 모범 답안을 기대했는지 열심히 감시(?)하며 부지런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20분이 경과하자 답안을 제출한 사람은 5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10분만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좋다’라고 말했다.

나는 30여분 뒤 합격자를 즉석에서 발표하겠다고 공표했다. 나는 제출된 답안에 대해 30여분 만에 옥석을 가려내 1차 합격자를 골라냈다.

합격자는 모두 3명이었다. 공교롭게도 회사에서 이번 공채에서 뽑으려고 계획한 인원도 3명이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면접자들은 저마다 잔뜩 기대를 하며 발표를 기다렸다.

“오늘 선발 기준은 여러분들이 평소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생활하는 인재(人材)인지 아니면 되는대로 시간가는대로 사는 인력(人力)인지를 주안점으로 보고 선발했습니다”

나는 제출된 몇 편의 내용을 소개했다.

우선 김 00 씨가 제출한 답안이다.

지출 명세서에는 여자 친구 다이아반지 500만 원, 외제 자동차 구입 8천만 원, 유럽여행 3천만 원... 합계 5억 7천만 원이라 적혀있었다.

또 서 00 씨의 지출 명세서다. 여자 친구 밍크코트 3천만 원, 아파트 구입 5억 원... 합계는 11억 원이었다.

또 한 사람은 효자인 듯했다.

고향마을 논 3천 평 구입 1억 원, 집수리 1억 원, 암소 5마리 구입 2천500만 원... 합계 8억 5천만 원 등이었다. 대부분이 사용한 금액이 30억 원을 넘지 못했다.

단지 3명만이 80억 원, 95억 원, 100억 원의 지출 명세서를 각각 제출했다.

그리고 합격자 한 사람의 지출 명세서를 소개했다.

편백나무 단지 및 참나무 단지 조성 30억 원(임야 구입비 포함), 산림욕장 및 부대시설 10억 원, 한민족 뿌리공원 조성 20억 원(조각 작품 별도), 식량 곤충 사육단지 조성 5억 원, 유기농 채소 재배단지 5억 원... 물론 저마다의 사업에는 사업목적과 기대효과, 수지분석 자료가 보충설명되어 있었다. 이 합격자는 80억 원 지출에 20억 원은 예비비로 남겨두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인생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 작성한 답안이었다.

“여러분 중 60억 원 이상 사용한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드세요. 손을 들지 못한 여러분은 오늘 면접에서 탈락입니다. 이의 있습니까?”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고 조용히 돌아갔다.

그날 대표와의 면담이 있었다. 이사장도 얼굴이 화색이 되어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 돈 100억 원도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사람이 틀림이 없죠. 그런 사람을 채용해 어디다 쓰겠습니까?”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사장은 그때 그 사원 면접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당시 입사한 친구들 3명은 지금까지 이직을 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 곁눈질하지 않고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이사장은 또 한 번 신입사원과 약간의 경력사원 선발에서 면접을 맡아줬으면 하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이제는 이사장 소신대로 이사장의 식구들이니까 직접 해 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인생을 살면서 목표를 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확실한 목표가 없으면 아무래도 대충대충 생활하게 마련이다. 특히 그 사람이 젊은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노래가 나훈아가 부른 ‘ 나침반’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속으로 ‘참 딱한 사람이 군’ 하면서 말이다.

‘종로로 갈까요, 미아리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갈까요’가 그 노래의 가사다.

아직까지 갈 곳을, 목표를 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면접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목표는 또렷이 세워야 한다. 특히 젊은이라면 목표가 없고 꿈이 없다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나 또한 내가 세운 목표를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건강을 잃어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바로 앞에 세워둔 건강 회복이라는 목표를 우선 달성한 후 최종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내 책상 앞 벽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

One more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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