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통?진심은 통하게 한다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진심이 최대 무기

by 연오랑

오래간만에 반가운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근처를 지나다가 근황이 궁금해 전화를 했단다. 전화를 한 친구는 25년 전 내 부서의 부하 직원이었다. 전화선을 타고 느껴지는 목소리는 25년 전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가 아니라 말을 더듬는 듯한 말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는 25년 전 내가 한국브리태니커 회사의 중간 매니저인 사업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입사한 친구였다. 면접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첫눈에 불합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말을 더듬는다는 점이었다. 입사 후 첫 일이 사람을 만나 백과사전을 판매하는 일인데 말을 더듬어서야 어떻게 고객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불합격의 이유는 명확했다.

불합격한 그 친구는 6개월여 뒤 신입사원 모집에 또다시 지원해 면접시험에 나타났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았는데도 벌떡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그러고서는 내게 이 회사에 입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좀 써 달라며 애원하다시피 했다.

2번째 지원인 데다 말까지 더듬는 그가 반드시 입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 말에 따르면 그는 소위 부잣집 아들이었다. 취직할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이 회사에 입사해 미국의 마케팅 업무, 즉 영업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제가 책임지고 인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라며 지역장 상사를 설득해 입사를 허락받았다.

그는 남들보다 열의가 대단했다. 교육기간 중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을 받았고 특히 자신의 단점을 아는 듯 스피치 훈련에는 남다른 관심과 열의를 보였다. 물론 나도 다른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의 단점인 말더듬이는 그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듯 보였다. 그는 분명 남들보다 성질이 급해 보였다.

문제는 교육이 끝난 후 현장에 투입됐는데도 그 말더듬이는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증상은 날로 심해져 갔다. 그가 업무에 자신이 없어하는 표정이 역 역했다.

어느 날 난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였다. 대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다 잘 아는 경제계 유명 인사였다. 아버지의 말을 요약하면 ‘사람 좀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고생을 시켜도 좋고 그 어떤 어려운 일을 시켜도 좋으니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내가 느낀 바로는 경영수업을 외부에서 혹독하게 경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현장교육에 돌입했다. 사람을 만나 명함을 건네는 방법, 인사를 건네는 방법, 지리를 잡는 위치 등 어프로치 기법은 물론 상품설명을 하는 요령, 고객의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 등 크로징 기법까지 일련의 스피치 기법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기한 듯 내가 고객에게 계약서 서명을 받아내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 모든 세부적인 과정과 스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의 태도는 달라졌다. 매사에 자신감을 회복하자 실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체면과 자존심도 내려놓은 듯했다. 그는 ‘이달의 세일즈 스타 10인’에 선정될 정도로 탁월한 실적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고객을 설득하는 과정이 궁금했다. 그 몰래 나는 그가 고객을 만나는 어느 호텔 커피숍의 인근 자리에 앉아 전 과정을 관찰했다.

그는 첫 과정을 내가 가르친 대로 잘해 냈다. 잠시 후 상품 설명으로 들어가자 우려했던 대로 말을 더듬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그 정도가 심해졌다. 급기야 그의 표정을 보니 얼굴이 벌개 져 스스로도 답답해하는 표정이 역역 했다. 거기에다 상대방 고객이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상품의 필요성이 적다고 답하자 마침내 그는 테이블을 탁 치며 “좋~습니다”라며 흥분해 뒤로 까무러칠 지경이 됐다. 누가 보아도 서툰 솜씨였다. 그런데 그 고객은 웃으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바로 얼굴이 벌게지면서까지 열심히 상품을 소개하는 열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창한 설명은 아니지만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확신에 찬 설명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는 내가 말한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만큼의 진실성을 전달하는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좋~습니다’라는 확신에 찬 한마디가 고객으로 하여금 상품에 대한 신뢰감을 가져왔고 1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는 계약에 서명하게 한 것이었다.

그는 그 후로 그 서툴고, 말 더듬는 약점을 가지고서도 뛰어난 실적을 거뒀고 지금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경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간혹 그가 지나가는 길이라며 내게 전화를 하는 이유는 옛날 내게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기억 때문인지 이제는 거꾸로 나를 스카우트하겠다는 뜻임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말꼬리를 돌려 가로막곤 한다. 그 와의 좋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저 옛 상사 까지가 제격이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그 옛날 얼굴이 벌게지면서 까지 ‘좋~습니다’ 리고 외치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떠한 미사여구(美辭麗句) 보다도 진실이 설득의 가장 큰 무기임을 증명해준 친구다.

진심은 매사를 통(通)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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