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베트남 새댁
농촌의 10가구 중 3,4가구가 외국인 며느리
여느 농촌 마을과 같이 내가 사는 시골 동네에도 외국인 며느리가 늘고 있다. 농촌의 10가구 중 3,4가구가 외국인 며느리를 얻는다고 하니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짐작이 간다. 특히 산간 오지일수록 더해 이들 지역초등학교에서는 토박이 한국인 아이들보다 결혼이주여성을 어머니로 둔 아이들이 더 많아 거꾸로 토박이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인근 도회지로 이사를 하는 가구도 늘고 있다.
100여 호 되는 우리 마을에도 5년여 전부터 외국인 며느리들이 늘기 시작해 지금은 10가구나 된다. 특이한 것은 이들 10가구 며느리들 중 5가구가 친동기간이거나 친구들이다. 먼저 시집을 온 며느리가 고향의 친동생 그리고 친구들을 동네 총각들에게 소개해 결혼이주를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우리 문화에 일찍 적응해 지금은 한국인 며느리들보다 시골에 더 잘 적응해 살고 있다.
우리 마을에 가장 먼저 시집을 온 외국인 며느리는 베트남 사람이다. 결혼 5년 만에 아이들을 셋이나 낳았다. 처음 며느리를 드릴 때의 일이다. 맏아들이 마흔을 눈앞에 두고서도 장가를 못 들자 정 씨 아저씨는 손수 나서 외국인 며느리 중매업소를 찾았다. 정 씨 아저씨는 여러 나라 아가씨들 중 베트남 출신을 원했다. 이 같은 결정 뒤에는 그 옛날 정 씨 아저씨가 월남전에 참전한 경험 때문이었다. 정 씨 아저씨는 해병대에 재직할 당시 월남에 파병된 청룡부대 출신이다. 보병인 아저씨는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고 했다. 그래서 전투 중 당연히 많은 베트콩을 사살하고 건물을 파괴했다고 한다. 이런 전쟁 담은 내가 자라나면서 수없이 동네 아저씨들로부터 들었고 누가 무슨 전투에 어떻게 참전했는지 소설을 한 권 쓰라고 해도 쓸 정도로 훤하다. 아저씨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에는 귀가 따갑도록 무용단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 씨 아저씨의 기억 속에는 또한 베트남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과 부지런함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정 씨 아저씨는 전투 중 베트남 사람(베트콩이지만)들을 여럿 사살한 인간적인 미안함도 남아있어 베트남 출신 아가씨를 택했다고 했다.
정 씨 아저씨 며느리는 인사성이 밝고 어른을 잘 공경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동네 사람들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결혼해 오자마자 부부간 금실이 좋아 아이들을 연년생으로 낳았으니 정 씨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샀다.
우리 동네에는 또한 필리핀에서 결혼 이주를 한 며느리도 있다. 동산 댁 아주머니의 며느리인데 신랑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아주머니의 아들은 나이가 마흔다섯 살이나 되는데 며느리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다. 게다가 아들은 재혼이다. 매일 술을 마시고 난폭하기까지 해 몇 해 전 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뒤 알려진 바로는 그 며느리는 시내 일식집에 일하러 다니다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이제 하나 있는 아들도 군대를 가고 홀아비로 살게 되자 외국인 며느리를 드리기로 했다고 한다.
25살이라는 필리핀 며느리 또한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났다. 가스 배달업을 하는 아들은 새로든 장가에 신바람이 났는지 아니면 전 부인에게 못해준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새댁을 무척이나 아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내게도 동네 후배가 되니 잘살아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배달 다니는 차를 손을 들어 세웠다. 그리고 지인들이 내게 보내준 건강식품 중 특히 남자들의 정력에 좋다는 산수유나 오가피 등을 한보 다리 차에 실어 줬다.
녀석은 “ 부인한테 잘해라”는 내 말에 “ 예, 형님 걱정 마십시오”라며 겸연쩍게 웃으며 내 뺐다.
이제 시골마을에서 외국인 며느리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닐 정도로 보편화됐다.
우리 농촌 총각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특히 결혼 이주해 온 며느리들이 잘 적응해 살고 친정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우리나라 이미지를 개선하고 향상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민간외교로서도 톡톡히 한몫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순수혈통을 어지럽히는 일이라며 결혼이주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이고 좁은 소견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대륙을 이주하며 살아왔고 또 진화해 왔다. 아시아에서도 최초 인류가 정착하고 산 곳이 동남아 지역이다. 그곳에 살던 인류가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으로 이주하며 정착했다. 먼저 오고 나중에 오고의 차이일 뿐 인류가 아닌 다른 종이 이주해 온 것은 아니다. 결혼이주가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되는 선택이다. 신부 감이 모자라 혹은 농촌으로 시집오기를 꺼리는 한국 아가씨들 때문에 농촌지역에서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하느니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우리나라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어제들은 이야기로는 곧 베트남 새댁의 친정식구들이 사돈댁을 방문할 예정이란다. 시아버지의 초청으로 친정 부모님이 온다는 소식에 베트남 며느리는 며칠째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마을을 위해 애쓰고 있는 며느리를 봐서라도 동네잔치를 열어 환영했으면 한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기야’ 마을의 올봄은 화창한 각종 꽃들에 이어 웃음꽃도 활짝 피어날 듯하다.
* 이 글은 2013년 5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