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직전의 중고차를 몰고 산으로 올라온 건 추억 때문
오랜만에 수목원 정상에 올랐다. 정상이라고 해봤자 주차장에서 1㎞남짓 한 곳이니 등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산보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난 등산을 전문적으로 다니지는 않았지만 대학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웬만한 산은 다 올랐다. 대학시절에는 1년에 3,4차례는 등산에 나서 김천의 황악산, 영동의 백화산, 정읍의 내장산, 함양의 지리산, 대구의 앞산과 팔공산 구미의 금오산 등을 등산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30대에도 산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보은 속리산과 대전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대둔산, 옥천의 환산, 인근의 민주지산, 공주의 계룡산 등을 올라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40대에는 주로 강원도 지역 산을 오른 기억이 난다. 설악산은 물론 눈 오는 겨울에는 태백산에 올라 눈을 원 없니 밟아보고 하산할 때는 동심으로 돌아가 비료포대를 깔고 미끄럼틀 삼아 내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50줄에 들어서자마자 건강에 빨간불이 켜져 등산은커녕 뒷산에 조차 오르지 못할 지경이 됐다.
이날도 평소 건강할 때면 20분이면 오르던 경북수목원 전망대를 1시간 이상이나 걸려 올랐다. 앞이 탁 트여 칠포해수욕장과 동해가 멀리 보이고 산 아래에는 신광과 청하의 저수지가,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보경사 뒷산과 멀리 칠보산이 가물거렸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시험 삼아 여기저기를 돌려가며 보고 있는데 산 아래에서 막 오르막 고개 길을 접어들고 있는 승용차 한 대를 발견했다. 보통 꼬부랑 언덕길을 오르는데 30여분은 족히 걸리는 길이라 내심 ‘열심히 올라와야겠구나’하고 망원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10여분을 더 머물다 이제 내려가야지 하며 마지막으로 망원경을 여기저기 돌려 보기로 했다. 역시 산 아래를 관찰해 본 결과 그 차는 열심히 2,3개의 커브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올라간 전망대인지라 내려오는 길은 우회 길을 택했다.
경북수목원의 5월은 이제 막 식물들이 싹을 틔우는 계절이다. 산 아래 시가지 지역보다는 봄이 한 달가량 늦게 도착한다. 경북수목원의 경우 700m가 넘는 고산지역이기 때문이다. 수목원에는 또한 여러 가지 식물과 나무들이 많다. 나무와 식물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한 까닭인데 멸종위기 식물과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는 모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한쪽에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식물들을 모아 연구하는 연구 포도 있어 눈여겨 둘러보면 곧 식물과 나무들에 빠지고 만다.
2시간여를 여기저기 다니다 수목원 입구 휴게실에 도착하니 어느새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수목원 입구에는 2 시간 여전에 망원경으로 관찰한 승용차가 이제야 들어서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 승용차는 한마디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출고된 지 2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 승용차는 시가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자동차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승용차였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내리는 운전자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운전자는 바로 내가 병원에서 2년째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환자 ‘오 씨’였다. 젊은 사람이 어디가 아파 그렇게 장기간 입원을 하고 있나 싶어 더 눈길이 가던 환자였는데 사실 한 달여 전부터는 보이질 않아 내심 궁금해하던 차였다. 오 씨도 나를 알아봤다.
“건강이 좀 나아지셨나 보죠? 산엘 다 오시는 걸 보면...”
나는 시원한 캔 음료수를 내밀며 부정도 긍정도 않은 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 씨도 건강이 회복돼 산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병명은 간암이라고 했다. 최근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돼 심각한 상황이 됐다고 한다. 의사 말로는 6개월여 살 수 있다며 주변정리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오 씨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지 그 말을 하면서도 표정은 담담했다. 순간 차에서는 우르르 아이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 녀석은 유치원생, 두 녀석은 초등학생쯤으로 보였다.
“아빠 전망대에 한번 올라가 봐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표정은 세상 그 어느 아이들의 표정보다 밝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짐작컨대 그날은 오 씨 가족의 마지막 나들이였다. 오 씨는 오래 세워두어 폐차 직전에 달한 승용차를 몰고 아이들과 마지막 나들이에 나선 것이었다. 오 씨의 차는 언뜻 보기에도 여기저기 문제가 있어 보였다. 우선 엔진 부분에서 약간의 연기가 나는 것으로 보아 라디에이터 부분이 새거나 소위 오바이트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탓에 언덕길을 올라오는데 물을 보충해가며 몇 번을 쉬었다 올라오느라 2시간 여가 걸린 것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괜찮겠지요?”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처에 있던 숲해설가에게 아이들 안내를 부탁하고 오 씨와 나는 차를 손보기 시작했다.
오래된 차를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인지 등산 왔던 한분이 자기가 정비사라며 몇 가지 손을 봐주고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까지는 무난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2시간여를 머물던 오 씨 가족은 내게 손을 흔들며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시간 반 뒤 오 씨는 집에 잘 도착했다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 잠자리에 들어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아이들과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폐차 직전의 중고차를 몰고 낑낑 거리며 산으로 올랐을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과 꺼져가는 오 씨의 얼굴이 교차했다.
내가 오 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들에게 자연물을 이용한 만들기 선물 몇 가지와 약간의 용돈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자상한 아빠, 항상 함께한 아빠의 모습만 남기를 기원해 봤다.
“ 오 씨!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희망을 놓지 마세요”
그 소리가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크게 외쳤다.
* 이 글은 2017년 10월에 쓴 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