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며 산다

아들 딸 사이에도 이상한 기류가 포착됐다

by 연오랑

병실 창문 밖이 갑자기 구급차 사이렌 소리로 요란했다.

금요일인 그날은 장기입원환자들이 서둘러 퇴원을 해 6인실 병실에 나를 포함해 3 사람뿐이었다. 이번 주말은 조용하겠구나 혼자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터라 응급실 쪽에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1주일째 입원해 있던 그 병원은 대학병원과 같은 큰 병원은 아니지만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병원이었다. 그래서인지 병실마다에는 골절환자와 디스크 , 관절 이상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과 환자인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옆 병상 환자의 화장실행을 돕고 식사 때면 식판을 날라주기 바빴다. 부러진 환자와는 달리 겉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2시간 여가 지났을까? 우리 병실에 머리와 어깨에는 붕대를 감고 다리에는 임시 깁스를 한 환자가 들어왔다. 성은 이 씨이며 교통사고 환자라는데 내일 오전 대수술을 해야 한다며 간호사는 여러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 나갔다.

사색이 되어 뒤따라온 아주머니를 보니 환자는 대략 50대 초반쯤으로 추정됐다. 군대보다 이른 저녁을 먹고 TV를 켜려는 순간 또 한 명의 환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머리와 어깨, 발목에 붕대를 감은 환자였다.

침상의 이름표를 보니 최 씨이며 이번에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언덕에서 굴렀다고 간호사는 알려줬다. 잠시 뒤 허급지급 달려온 아주머니를 보니 이 환자는 50대 중반쯤으로 짐작이 됐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맞은편 침상이 붕대 감은 귀신(?)들 차지가 됐다. 끙끙 앓는 소리 덕에 새벽녘에서야 잠든 나는 아침식사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벌써 먼저 들어온 이 씨는 수술 채비에 바빴다. 그새 가족들이 달려오고 교회 목사님도 달려와 막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이 씨는 집사라고 했다.

수술에 들어간 이 씨는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았다. 그사이 최 씨는 정신이 들었는지 아니면 다음 수술 차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나는 저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낀데...” 라며 걱정 반 두려움 반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최 씨는 논두렁을 태우다 불이 집과 인근 야산으로 옮겨 붙을 위기에 처하자 허둥지둥 물통을 가지러 집으로 달려가다 3m 높이의 논둑에서 굴러 그만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오후 2시쯤 두 환자는 수술실을 교대했다. 긴장했던 아주머니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한 방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역시 흉을 보듯 잠에 빠진 환자를 힐긋힐긋 쳐다보며 사고 경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저씨의 직업은 소방관이며 불을 끄기 위해 긴급출동을 하다가 소방차에 실은 물이 출렁거리는 바람에 차가 전복됐다고 했다. 같이 타고 있던 2명은 멀쩡한데 운전을 하던 남편만 많이 다쳤다며 모든 탓을 재수가 없는 탓으로 돌렸다.

순간 난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 2 사람의 사고가 분명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고가 난 곳도 불이 난 곳도 내가 잘 아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이들 중 한 사람은 실수로 불을 낸 사람이며 또 한 사람은 이불을 끄기 위해 달려가던 소방관이 아닌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금 새 그렇게 내 머릿속은 정리가 되었다.

저녁때가 돼서야 돌아온 최 씨는 엄살이 심한지 더 심하게 다친 이 씨 보다 더 끙끙 앓는 듯했다. 다음날 일요일이 되자 교회 집사라는 이 씨의 침상에는 교회 신자들의 방문이 잇따랐다. 옆 침상의 최 씨는 대조적으로 문병객이 없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튼 시끄러워...”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밤이 되자 양쪽 아주머니들은 교대한다며 사라지고 이 씨 곁에는 개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딸이, 최 씨 곁에는 모대기업에 다닌다는 아들이 각각 퇴근을 해 병상을 지키기 위해 왔다. 그날 밤 나는 환자들이 모두 잠든 뒤 두 환자 간의 관계(?)에 대해 대략 이야기를 해줬다. 오지랖이 넓어서인지는 모르지만 특별한 인연에 대해 서로 알고는 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두 사람 모두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밤이 늦은 시각이라 난 그만 잠들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자 병실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최 씨와 부인은 이 씨와 그의 부인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아마 아이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했고 최 씨 또한 자신이 낸 불을 끄기 위해 출동하다 사고가 난 이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날 이후 본인들은 물론 부인들도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다른 환자가족이 샘을 낼 만큼 가까워졌다.

3,4일이 더 지나자 저녁이면 교대하러 온 아들 딸 사이에도 이상한 기류가 포착됐다. 27살의 건장한 청년과 23살의 예쁜 처녀가 만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환자는 뒷전이고 휴게실로 옥상으로 부지런히 나 다녔고 이 청춘남녀는 1주일도 안 돼 아침이면 직장에 데려다준다며 차에 태워 병원을 나서는 사이가 됐다.

한 달여가 지나 나는 외래 진료를 위해 그 병원을 다시 찾았다. 복도에서 마주친 수다쟁이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두 환자가 퇴원하는 대로 서로 사돈을 맺기로 했다고 한다.

입이 가벼운 남자로 인식될까 봐 두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할까 말까 망설였던 때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자칫 잘못될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의 인연이 자식들로 인해 좋은 인연으로 끝맺게 될 것 같아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인연에 대해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다 잠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필) 어느 중고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