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딸부자로 산다는 것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탄다?

by 연오랑

50이 넘어서인지 친구 녀석들 몇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된다. 게 중에는 아들만 둘인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들, 딸이 골고루 1명인 친구, 나같이 딸만 셋인 사림도 있다. 아들 가진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들을 군대 보내는 이야기가 주류이고 딸 가진 친구들은 시집보낼 일을 걱정한다. 하지만 결론 중의 하나는 항상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가진 부모는 리어카 끈다 ‘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물론 이 말은 아들 가진 녀석들이 딸만 셋인 내게 위로랍시고 하는 말일 줄 잘 안다.

딸을 셋 키우는 일은 그만큼 재미가 있다. 3,4살부터 부리는 재롱은 언제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가 쏠쏠하다.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도 사내아이들처럼 누구를 두들겨 패 돈을 물어주는 일도 없고 혹시나 담배를 피우지나 않나 감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등 속을 썩이는 일도 적다. 그래서 아들 키우기보다는 딸을 키우는 것이 수월하다고들 한다.

물론 이 말에는 나도 공감을 한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어느 한구석‘그래도 하나쯤은 있는 것이...’하며 말꼬리를 흐리게 된다.

딸만 키우면 우선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아들 가진 부모들이 단골로 자랑삼아하는 말 중에 ‘등 밀어 줄 아들’ 이야기를 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콧수염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하는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야 그 때밀이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등을 밀 수 있다. 긴 목욕수건으로 등을 혼자서 낑낑 거리며 밀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아들을 군대 보내 놓고 잘 지낼까 걱정을 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러운 일 중의 하나다. 아들이 없어 나라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국가와 아들 가진 사람들에게 미안한 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우리 집 수놈 고양이 ‘소심이’ 에게 “군대 가야지, 이왕이면 해병대 가야지”하며 한풀이를 한다. 물론 그놈은 나의 이 같은 마음을 아는지 “야옹”하고 도망치며 힐긋힐긋 돌아본다.

딸만 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날 때는 슈퍼마켓에 갈 때다. 특히 밤이 깊어 딸들과 마누라를 밤길에 내놓는 일이 마음에 걸려 내가 대신할 때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살 때가 종종 있다. 슈퍼 카운터 아주머니는 한동안 내가 홀아비인 줄 알았다고 한다. 마누라가 시키는 일이 두부와 콩나물, 감자 등 식료품을 사 오라고 할 때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홀아비다. 아들이 있었다면 아들에게 시키면 될 일을...

최근에는 TV나 신문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다. 워낙에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니 딸 둘을 서울 타지에 내 보내 놓고 있는 것이 ‘물가에 아이들을 내보내 놓고 있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아들들이라면 걱정을 덜 해도 될 일을 딸 가진 죄로 노심초사해야 하는 것은 사내아이를 군대 보내 놓고 하는 걱정에 버금간다.

큰 걱정 중의 하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딸자식들이 사회에 나가 겪게 될 차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변해 여성들도 직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됐는데 같은 능력, 같은 일을 하는데 겪게 될 차별이 아직 존재한다는 점은 딸 가진 부모로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배필을 찾아주는 일 (물론 스스로 찾는 경우가 많겠지만) 또한 만만치 않는 일이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아들 가진 부모도 며느리를 잘 봐야 하겠지만 딸 가진 부모는 조금 더 하다고 해도 욕할 사람은 없는 듯하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어 그 끼리끼리의 수준을 높여 주려고 지금까지 갖은 노력을 했는데 그것이 통용될지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그렇다.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탄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냥 비행기를 공짜로 타는 것은 아니듯 싶다. 이 험난한 세상에 딸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미리 비싼 수업 료를 치른 대가가 아닌가 싶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

( 이런 말을 하는 순간에도 딸자식을 내준 장인 장모께 비행기를 태워드렸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아빠들은

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 같은 남자만 만나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옆에서 잠든 마누라 얼굴에 묘한 미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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