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목욕탕에서 추억을 밀다

by 연오랑

명절을 앞두고 목욕탕으로 향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목욕탕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목욕탕에 가는 일이었다. 그것도 때수건으로 빡빡 밀면서 하는 목욕은 가장 싫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목욕 가자!”라고 외쳤다. 혹시 동네 목욕탕이 수리에 들어가 문을 열지 않을 때는 자전거 뒤꽁무니에 매달려 30분 거리에 있는 부대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남탕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는 더 싫었다. 답답한 수증기에다 잠시 뒤 치러질 연례행사가 두려웠다. 아버지는 그 큰손으로 등과 온몸 구석구석을 빡빡 문질러 때를 밀었다. 때를 민 내 몸은 온톤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아들을 자랑을 하는 듯 주위 사람을 힐끗힐끗 둘러보곤 했다. 아버지의 목욕 절반이 내 몸에 때를 밀어주는 일이었다.

내가 그래도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때를 밀고 난 후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낙으로 그 곤욕을 참았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때를 밀고 난 후 밖으로 내보내 간이매점을 열고 앉아있는 아저씨를 향해 “우리 아들에게 먹을 것 좀 주세요”라고 외친다. 나는 삶은 계란에다 콜라, 양갱을 먹으며 내심 아버지가 좀 천천히 때를 밀고 나왔으면 바라기도 했다.

그러니 내 몸집은 때를 민 그 이상으로 먹어댄 목욕탕에서 불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목욕은 고등학생이 되어 객지로 나가면서 멈췄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장가를 들어서도 한 번도 아버지와 목욕을 같이 할 기회가 없었다.

장가를 들어 딸아이들만 셋을 둔 ‘딸딸이 아빠’를 넘어 ‘경운기 아빠’가 됐으니 아이들과 목욕탕에 갈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유치원에 다닐 즈음에 간혹 집에서 샤워를 시킬 때면 때를 밀어주던 흉내를 내 봤지만 등을 빡빡 문질러 발갛게 달게 할 기회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 옛날 아버지가 등을 밀어주는 생각이 간간히 났지만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제 작년의 일이다. 폐암 진단을 받으시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오늘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싶다는 말씀을 하셔서 동네 목욕탕으로 갔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내부 공간도 많이 바뀌었지만 위치는 옛날 그대로였다. 남탕에는 아직도 그 옛날 등나무 수족관과 음료수 냉장고가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집에서 사워만 해오던 아버지는 뜨거운 물에서 한참이나 나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게 등을 밀어 달라며 등을 내미셨다. 그 순간 내 코끝이 찡해 왔다. 그렇게 넓어 보이든 등은 어느새 그 옛날 반쪽도 안 되어 보였다. 젊은 시절 직업군인인 탓에 누구보다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나는 등을 말 때마다 지쳐 나가떨어지곤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암 투병을 하고 계셔서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앙상한 뼈만 남기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그날 이후 좋아하시던 돼지고기를 여러 날 상위에 올렸다. 붕장어도, 고추튀김도, 어죽도... 평소 좋아하신 많은 음식들을 올렸으나 끝내 아버지는 회복을 못하시고 세상을 떠셨다.

일요일 아칭이면 아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하는 부자를 볼 때마다 옛일이 생각나고 한편으로는 부럽다. 나의 40여 년 전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빠 새 때수건으로는 싫어요!”

응석을 부리던 장면이 뿌연 수증기로 덮인 거울 사이로 비친다.

빡빡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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