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꽃 파는 아가씨, 당신이 궁금해요

by 연오랑

누가 내게 어떤 꽃이 제일 예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장미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 1학년 때의 일이다. 새로 옮긴 하숙집 건너편 집에 내방과 창문을 마주하는 방이 있었다. 내가 주로 밤 11시 전후면 잠드는 것에 비해 건너편 방에는 12시가 넘도록 불이 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니 그 방에 불이 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항상 불안했다. 잠이 드는 몇 분 동안 나는 온갖 상상을 했다. 그 방의 주인은 누구일까에서부터 만약에 통행금지에 걸렸다면 파출소 나무의자에 새우잠을 자고 있을 텐데...

아니 혹시 데모를 하다 잡혀갔나... 밤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던 의문은 며칠 후 우연찮은 기회에 풀렸다.

내방 창문에는 화분과 꽃병을 놓을 만큼의 소공간이 있었다. 일종의 건물의 눈썹이요 테라스였다. 내방의 전 주인이 여자분이었는지 화분 2개와 빈 꽃병을 그대로 둔 채 이사를 갔다. 골목길에서 내방 창문은 키가 웬만하게 큰 어른이라면 창틈에 손이 닿았을 만큼 높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창문 앞의 꽃병에 장미꽃이 꽂혀있었다. 꽃내음이 방안 가득히 퍼져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이곳에 꽃을 꽂아 둔 주인공이 궁금해졌다. 곧바로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달려가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 앞집 아가씨인데 언제 골목에서 만나면 인사라도 해”

아주머니의 말로는 꽃집에서 일하는 아가씨인지 매일 집으로 꽃을 가져와 여기저기 나눠준다고 했다. 전 내방 주인도 비슷한 또래라 인사를 터놓고 지냈는데 자주 꽃을 꽃병에 꽃아주 곤 했다고 한다. 그 빈 꽃병이 창문에 있던 궁금증이 풀렸다.

며칠 뒤 그 아가씨와 골목에서 마주쳤다. 나이는 스물다섯 전후로 보이고 얼굴은 계란형의 탤런트 고 00을 닮은 미인형이었다.

“앞집 맞은편 방에 이사 온 김 00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그저 웃을 뿐 말이 없었다.

남동생 같은 사람에게 구태여 이름까지 알려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날 이후 그녀와 마주치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녀의 출근 시간과 나의 첫 수업 시간이 비슷해 골목길에서 버스정류장까지의 300여 m 거리를 동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골목길 안쪽의 어린이 놀이터 겸 소공원에서도 가끔씩 마주치곤 했다.

4개월 여가 흐르자 만남도 대화도 자연스러워졌다. 간혹 캔맥주를 들고 공원에서 대작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어느 날부턴가가 5살이나 많다는 것이 밝혀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부르게 됐다.

나는 장미꽃의 정체가 가장 궁금했다.

그녀는 2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낮에는 개인 사무실에서 경리 일을 맡아보고 있었고 퇴근 이후에는 사무실 인근 대로변에서 꽃을 파는 이중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 햇수로 3년째라고 했다.

그녀가 2개의 직업을 가진 것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바로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방에도 남동생이 군대에 가기 전 까지는 두 남매가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밖에도 고향에 3명의 동생들이 더 있다고 했다. 다행히 사무실에서 받는 월급 못지않게 꽃 파는 수입도 쏠쏠하다고 했다.

내 방 창문 앞에 꽂히는 꽃은 전날 팔고 남은 꽃을 가져와 손질한 후 꽂아주는 꽃이었다.

그녀의 꽃은 철이 바뀔 때마다 달랐다. 하지만 나는 장미를 가장 좋아했다.

매번 꽃을 받기만 하던 나는 어느 날 그녀에게 제안을 한 가지 했다. 언젠가 그녀가 가장 부러운 일 중의 하나가 대학 캠퍼스를 걸어보고 대학 축제를 참가해 보는 일이라고 한 말이 기억났다.

나는 다음 해 봄 축제 때 그녀를 파트너로 초대했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내 파트너로 나이가 많아 보일까 봐 옷차림에도 무척 신경을 섰다. 축제기간 누구도 나보다 나이가 5살이나 많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파트너 노래자랑 코너가 있었는데. 그녀와 나는 ‘장미’라는 노래를 불러 1등을 차지했다. 아마도 장미를 더 좋아하게 된 이유가 된 것 도 같다.

그녀와 나의 이별은 고향에 계신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끝이 났다. 시골집에 아버지가 홀로 남고 살림을 맡아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고향 동네 교회에서 신랑감을 만나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도 사법시험 준비에 매달리느라 대학생활의 낭만을 접어야 했다.

어제는 병원 밖 꽃집 앞을 지나다 장미를 가득 꽂아놓은 고무 통 앞에 앉아 꽃을 파는 아가씨를 발견했다. 그때 그 아가씨와 유난히도 닮았다. 장미의 향기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순간 나는 결코 그 창문 앞 장미 향기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할머니가 다 됐을 나이지만 그때 그녀와 부르던 ‘장미’라는 노래가 귓전에 맴돈다.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는 장미와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1981년 나와라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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