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수집 추억이 없나요
얼마 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 형님 나 우체국장으로 어제 승진했어요”
40년 전 한집에 같이 살던 동생 녀석이었다. 대구의 모 동네 우체국의 국장으로 승진했다는 문자였다. 투석치료를 받는 4시간 동안 나는 녀석과의 옛 추억에 잠겼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적 취미는 우표 수집이었다. 학교 가는 길목에 위치한 우표수집 가게에는 희귀한 우표들이 장식대를 차지하고 있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새로 내 짝이 된 친구는 이미 2년여 전부터 우표를 취미 삼아 수집하고 있어 우표 책만 벌써 2권 째를 채워가고 있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우표를 수집하면 공부가 많이 된다는 말에 솔깃했다.
실제로 나는 이승만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에서 단기라는 연대를 알기 시작했고 엉겅퀴, 큰 꽃 으아리, 제비꽃 등 들꽃들도, 호랑나비, 붉은 점 모시나비, 유리꽃나비, 이른 봄 애호랑 나비 등 나비와 곤충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문화재와 역사적 인물 또한 우표를 통해 알게 된 인물이 많다.
그래서 나는 새로 나온 우표를 구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우표 수집을 시작하면서 내게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바로 저축하는 습관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한 나는 항상 호주머니 속에는 차비를 하고 남은 자투리 잔돈이 남았다. 우표수집 전에 이 돈은 당연히 군것질을 하는 돈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우표수집을 시작한 뒤로는 이 잔돈은 귀한 수집 밑천이 됐다.
우표수집을 시작하고 6개월 여가 되던 등의 일이다. 그냥 발행되는 우표만 사 모으던 어느 날 그보다는 더 오래된 고 우표를 사 모아야 나중에 큰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다. 단순 우표 외에 우표와 설명이 함께 인쇄된 일명 ‘시리즈’를 모아야 나중에 값비싼 돈으로 팔 수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차비를 하고 남은 잔돈으로는 그런 우표를 사 모으는데 역부족임을 느꼈다. 그래서 명절날 받은 세뱃돈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심부름 값, 심지어 고물을 모아 판돈까지 우표수집에 투자했다.
그야말로 우표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그런 때였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랫방에 살고 있는 동생 녀석이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그 녀석의 어머니는 벌써 1년여 전에 돈을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가 최근 부산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그 녀석의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다녀갔다. 멀리 옆 동네 중국집에서 만난 그 녀석은 아버지께는 비밀이라는 조건으로 어머니의 부산 직장 주소를 받아와 보관하고 있었다. 녀석은 어머니가 돌아간 지 1 한 달도 못돼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편지는 5일 만에 집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우체통을 먼저 살펴본 것이 다행이지 그 녀석의 아버지가 혹시 먼저 발견했더라면 들통이 날 뻔했다.
“형님아! 이 편지가 왜 되돌아왔노?”
내방으로 건너와 찔찔 짜던 녀석이 내미는 편지를 보니 단박에 되돌아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시 20원짜리 우표를 붙여야 했으나 녀석은 10원짜리 우표밖에 붙이지 않았다. 우표를 살 돈이 모자라는 데다 설마 10원짜리 밖에 안 붙인 사실을 알겠느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녀석은 곧 있을 가을 소풍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물건과 용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어머니께 보낸 것이었는데 되돌아오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 댔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사흘을 망설였다. 우표 수집을 위해 그 더운 여름 먹고 싶은 아이스케키 사 먹는 것도 참았고 한번 갈아타는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30여분을 걷던 생각도 났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달구 똥같이 뚝뚝 흘리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며칠 뒤 새벽, 집을 나서며 녀석을 불러냈다. 눈을 비비며 나온 녀석이 내가 내미는 20원짜리 우표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20원짜리 우표는 제56회 전국 체육대회 기념우표였다.
그 당시 내게 우표는 취미였지만 그 녀석에게 당시 편지는 절실한 것이었으리라.
얼마 전 내가 다니던 중학교 앞을 지나갔으나 옛날 우표를 파는 가게가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문을 닫은 지가 한참은 된 것 같다. 아니 우표를 수집하는 아이들이 현재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큰아이 책장에는 당시 수집해 놓은 우표 책 3권이 늠름하게 꽂혀 있다. 딸아이에게는 보물 1호가 됐다.
“얘들아 아빠는 손 편지 읽기를 좋아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