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도덕성
도덕성을 갖춘 미인이 더 아름다운 것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을 따라 현재까지 나타난 제도와 이념이 자본주의이다. 또 그 자본주의의 꽃은 기업이고 그 기업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과 생산, 유통이 필요하다. 기업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고 그 구성원과 사회, 국가에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어느 하나 소홀해서는 소비자들,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 사랑받는 과정에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광고를 하고 호감을 얻으려는 홍보를 한다. 홍보가 성공해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그 회사는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즉 호평은 수많은 소비자들로부터 나온다. 이는 마치 민주국가의 권력이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기업은 바로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탄생하고 성장한다.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업을 살찌우게 되고 기업은 그 관심과 사랑을 양분 삼아 자라난다. 그래서 대기업은 많은 사랑의 집합체이며 이익의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컨대 자동차를 생산해 사랑과 관심을 받아 대 재벌이 됐다고 가정해 보면 직접 생산에 관여한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성과급을 준다. 그러고도 이윤이 많이 남았다면 당연히 시회에 그 일부라도 환원하는 것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묵묵히 제품을 사랑해준 국민들에 대한 보답이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생산한 제품을 보급하기 위해 수많은 차량들이 공장을 들락 날락 했다고 가정해 보자. 원활한 수송과 매출 증대를 위해 그 공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 수많은 불편과 환경오염, 교통체증 등의 불편을 끼쳤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제품을 실은 차량들로 인해 10분이면 통과하던 길을 30분 넘게 결려 통과하게 되고 인근 주민들은 기름 값을 필두로 시간 지체에서 오는 손해, 매연으로 인한 불편 등 수많은 손해를 끼치게 된다. 결국 그 회사 단독으로 이익을 창출했다고는 볼 수 없다. 도로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거운 짐을 운송하느라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닦고 보수한 도로가 더 많이 훼손되고 또다시 정비나 보수를 위해 주민들의 혈세가 들어가게 된다. 주변 주민들도 그 회사의 발전과 이익창출에 그만큼 간접적인 기여를 해 이뤄진 것이다. 대기업이 이익을 주변 주민들에게 환원해야 하는 이유요 논리이다.
회사와 주민 간에 서로 상부상조해야 하고 동반자적인 생각을 갖는 데는 우선 기업의 도덕성이 필요하다.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좀 더 도덕성을 갖도록 시민들은 원하고 그것이 지켜졌을 때 더 큰 사랑과 호감이 그 기업에 쏟아진다. 하지만 그 도덕성을 팽개치고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할 때는 호된 비난이 따른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유무형의 규범을 외면할 때 소비자는 제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외면받게 되고 몰락의 시발점이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폭스바겐사가 배출가스 배출 조작을 쉬쉬하다가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바로 도덕성을 경영의 최고 가치로 두지 않은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정직하다’는 선입관이 깨져, 한 기업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도덕성과 국민성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 독일 국민들은 전후 쌓아 온 신용과 정직성을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이제 세계 소비자들은 독일 사람들을 가리켜 흉악한 사람 취급을 할 것이 뻔하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학살한 전범이라는 인식이 새로 부각될지도 모른다. 독일 국가와 국민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경험이 있다. 두산이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한 사건이 그 하나이며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사건, 현대중공업의 선박 시운전 중 외국선박 충돌 사건 등이 그 예이다.
개인에게도 도덕성이 요구되듯이 기업에도 도덕성은 필수다. 이 도덕성을 감시하는 사회의 제반 기능들이 원활히 작동돼야 한다. 감독권이 있는 행정기관의 감시감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하고, 언론의 역할 또한 제대로 수행돼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겼다’는 비판이 일지 않도록 감시 감독하는 자들의 도덕성도 올곧아야 한다.
개인의 도덕성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더 큰 도덕성을 원하듯 지위가 높고 남들 앞에서 리드를 하는 정치인일수록 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일부는 도덕성보다는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지도자가 있다. 받은 사랑만큼, 사랑을 주는 만큼 자신은 더 절제하고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안타까울 때가 많다. 지위가 높은 만큼 도덕성을 높이 쌓아야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개인이던 기업이던 이 추운 겨울에 움츠려 있지만 말고 자신의 도덕성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기업은 사랑받은 이상의 도덕성을 갖춰야 일류기업이 될 수 있고 정치인은 지지를 받은 이상으로 도덕성을 갖춰야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도덕성을 갖춘 미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