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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Feb 22. 2019

지금은 어떠냐고?

젊은 사람이 건방지게 전하는 이야기

어느 누구도 불안하지 않은 삶이 없지만, 나는 시작부터 불안했다. 어느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나는 시작부터 힘들었다. 불안하고 힘들게 살아온 인생은 아직도 불안하고 힘들다. 많은 사람의 격려와 위로, 그리고 질책과 훈계가 반복되어도 눈 하나 깜짝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따위 말들에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 시대의 이상한 소리로 여겨졌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역시 내게도 이상한 소리였다. ‘청춘은 늘 아파야 하는가’라는 고민부터 시작해서 ‘꼬이고 꼬여버린 인생’ 때문에 생긴 자괴감이 계속 날 감싸 안았다. 그때마다 저 멀리서부터 들리는 ‘아파야 청춘이지’라는 소리는 위로가 아니라 화만 돋았다.     


대다수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픔 없는 사람 없고, 고통 없이 얻을 수 없다는 그 끔찍한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고,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상대적인 고통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견할 수 없으며, 수치화할 수 없다. 우리가 시대적으로 처한 어려움이나, 내면에 생겨버린 어려움들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릴 만큼 비참한 것들 투성이었다. 전쟁 시작도 전에 상처를 잔뜩 입은 한 병사같이, 우리 인생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이미 시작도 전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준비, 출발!” 신호인 총소리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렇게 무식하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다 뛰어서 뛴 것일까? 아니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어쨌든, 돌이켜보면 이유 없는 뜀박질이었다.      


한참을 뛰었을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 어느 광고의 멘트처럼,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 각자가 원하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뛰어가면 그곳이 길이 되고, 그곳이 미래가 된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나도 너도 다 각자의 길로 뛰어갔다. 가볍게 인사 정도 나누었던 사람들을 포함해, 나름 친했던 사람들도 많이 떠나갔다.      


붙잡지도 않았다. 발바닥에 불나게 뛰고 있는 마당에, 남들에게 손을 뻗칠 여유는 없었다. 떠나든 말든, 그것은 각자 살 길이라 여겼다. 나도 어차피 내 길 갈 것이고, 그들도 어차피 각자의 길로 갈 것이다. 물론, 손을 뻗쳐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쉽기도 했었다. 그래서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시선만 꽂았다.     


시선 꽂을 시간도 없다. 그렇게 빨리 가 버렸다.




또다시 한참을 달렸을까.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외로웠고 쓸쓸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후회 때문에 자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사람은 떠났고, 나는 알 수 없는 곳에 와 있었다. 다시 돌아갈 용기도 없었다. 게다가 돌아가는 길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그곳에 있었다.      


이십 대 초중반을 아무 의미 없이 보냈다. 공부를 죽자고 했다거나, 여행을 많이 다녔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이라도 조금 더 모아놨다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어중간하게 하다가 모든 것을 놓쳤다. 성적도, 시간도, 사람도, 꿈도. 아무도 탓을 할 순 없지만 남을 심하게 탓하고 싶을 만큼 내가 미웠다. 여태 한 게 없으니 내 인생은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고작 신학대 출신에, 말주변 없는 전도사에, 할 줄 아는 일이란 막노동밖에 없는데 말이다. 인생에서 모든 계획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것 또한 내게는 무척이나 짜증 나는 일이었다.    


한참을 서 있었던 것은 그다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승자라는 이상한 철학을 가진 나는 ‘존버’에 들어갔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나름 버티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불러댔다. 몇 년째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다시 가만히 들어보니 내 이름이 맞긴 하다. 신기했다. 내 이름을 애타게 찾던 사람, 그리고 그렇게 모인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나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그냥 열심히 뛰고 있다. 짧은 경험과 지식으로 여기가 맞긴 한데, 내가 가진 게 없으니 미래는 더욱 암울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던 나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넌 버티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소리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렇지만 '존버'를 지향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행동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마음 먹지만, 막상 또 아이들을 보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고작 그 몇 분의 행복을 위해 20시간 이상의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야 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안하지 않은 삶이 없지만, 나는 지금도 불안하다. 어느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나는 지금도 힘들다. 불안하고 힘들게 살아갈 나의 인생은 한치에 오차도 없이 불안하고 힘들 예정이다. 많은 사람의 격려와 위로, 그리고 질책과 훈계가 계속 반복될 텐데, 그때 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 그때, 어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지금 어떠냐고?
좋아. 이제야 내 길을 찾은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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