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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Feb 24. 2019

다시 꺼내 보는 이야기

가끔씩 과거에 빠지기

어젯밤 친구가 보낸 카톡으로 인해 나도 몇 년간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씩 다 열어보았다. 나한테 납치당했던(?) 날, 성산대교 밑에서 찍은 그 사진을 보면서 ‘행복당했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나도 왠지 몇 백 개의 폴더에 달하는 사진들을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아무리 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 한다지만, 가끔씩은 과거에 있었던, 그리고 고이 숨겨 놓았던 것들을 마주하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간과 현실 앞에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여유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시간임과 동시에,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사진에 대해 자신감은 없지만, 나는 나의 삶에서 당당하고 싶었기 때문에 시작한 사진이기에 사진의 퀄리티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혹시 앞으로도 내가 카메라 뒤에 서 있게 된다면 그때 역시 나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첫 해외 여행지가 일본이었다니.


내 첫 해외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대학교 졸업 직전까지 꽤나 많은 여행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나는 밥상을 스스로 걷어찼다. 용기 없음도 한 몫했다. 졸업 직전에야 해외를 가게 되었다. 엄청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와 일본으로 갔으나, 막상 도착하니 설렘은 어디 가고 긴장만 되었다. 일본어를 잘하는 덕후 친구 덕분에 첫 일본 여행은 무사히 끝났다. 수업도 빼먹고 일본을 갔던 터라 더 오래 있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이때는 이름 모를 어떤 산으로, 내 친구에 의해 납치되었던 날이다.


내게 엄청나게 많은 펌프질을 가했던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끌려간 곳은 인천대교가 보이는 곳이었다. 잔뜩 준비하고 온 친구에 비해, 갑작스럽게 끌려 온 나는 추워서 죽을 뻔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몰을 본 날이었다. 빈약한 삼각대가 망원렌즈를 버틸 힘이 없었는지 고꾸라져 몇 장 찍지도 못한 그런 날이었다. 이때부터 언제나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5분 대기조'의 정신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가장 방황했던 때였던 것 같다.


30살이 되기 전, 짧은 인생을 돌이켜 보면 질풍노도의 시기만큼이나 가장 처절했고 가장 방황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고, 그렇다고 관절염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중반에 때에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카메라 뒤에 숨는 것뿐이었다. 기숙사 통금도 무시한 채 밤을 새워 돌아다닌 적도 많았다. 밸런스가 깨진 그 날 하루는 결국 버리게 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감정은 금방 식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믿지 않기로 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조언과 첨언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름 철 우리 집은  달하고 미세먼지만 심하지 않으면 은하수를 볼 수 있다. 강원도 아니다.


가끔씩 내려가는 집을 상당히 좋아한다. 별 볼일 없는 아주 전형적인 시골 동네이다. 구멍가게도 없고, 버스도 하루에 4대만 지나간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사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밤하늘 때문이다. 굳이 높은 산을 올라가지 않아도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별을 보기에 괜찮다. 그런 동네에서 살았던 나는 할 수 있는 게 밤하늘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별자리나 천문학적 지식이 많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엄청나게 박힌 별들이 좋았고, 고요한 밤 속에서 나 혼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게 좋았다. 가끔씩 떨어지는 한 줄기의 별은 '우와'를 연발하게 했다. 사람보다 위대한 것은 자연이었다.




자주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5-6월 흐드러지게 피는 작은 꽃, 삘기는 사람들을 평안하게 만든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주고, 햇빛의 붉으스름함도 머금으면 하얀 색의 작은 털들은 황금빛으로 바뀐다. 금방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난 똑똑히 기억한다. 그것은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 '찬란하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때이다. 매번 다른 방향으로 찾아 들어가도 같은 반응으로 반겨준다.




날짜 별로 내림차순으로 정리된 폴더를 하나씩 열면서 그때 그 시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몸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사람의 생각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그때의 나에게 상태를 물어보는 질문은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위로를 준다. 4-5년 전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보면 과거의 나는 흠칫 놀랐다. 상당히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때보다 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리저리 방황했던 과거의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추억이라는 게 참으로 좋다. 반성뿐만 아니라, 내일을 더 힘들게 살아갈 나 자신에게 생각보다 괜찮은 위로의 말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때보다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 한 마디 해줄 수 있다.


나는 많은 날을 헤매었다. 사진을 돌아보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4-5년 전 것만 들춰보았다. 나도 친구의 말과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행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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