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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Feb 28. 2019

아이들과 함께한 두 달간의 캠프

얘들아, 지금은 돌을 골라내는 중이야


1월 2일부터 시작한 캠프는 2월 28일로 끝이 났다. 사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캠프라기보다는 삶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캠프는 다른 삶이라’라는 철학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고 싶은,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은,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미래의 삶을 현재 캠프를 통해 살아보는 것’     


학교에서 하는 수련회나, 전문 캠핑 단체에서 하는 캠프들을 욕할 마음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위해 빛나게 일하고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분들의 문제를 넘어서서 짧은 캠프 기간으로 아이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여러 차례 증명되고 있다. 2박 3일, 3박 4일의 경험으로 아이들의 삶이 바뀐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고 한다면, 그 아이는 캠프가 기폭제로 작용할 만큼 내적으로 성장한 아이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캠프 후에 달라진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본 적이 없다.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기간이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들과 같이 살자’였다. 말이 쉽지, 아이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미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직업이니까’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으나, 이번 캠프를 통해서 몇 백 번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 캠프를 통해서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아이들의 모습은 대부분이 가짜라는 것. 인천 OO지역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할 때였다. 아이들은 매번 내게 잘해오겠다는 말을 했다. 물론, 나 역시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집이라는 늪은 아이들을 계속 끌어당겼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에는 안정적인 집이 오히려 불안정적이다. 익숙한 환경에선 익숙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보내서는 습관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엄청나게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방과후학교 할 때 아이들을 7일 중에 7일, 매일 4-5시간씩 만났다. 2년이 지나자, 아이들이 거의 내 친척동생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그 아이들은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번에 같이 먹고 자는 생활을 해보니까 나도 몰랐던 것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놀란 마음을 간신히 움켜잡고 그날 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집에서 했던 습관들은 내가 알 수 없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 아이들은 바꾸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돌변하지만, 그 반대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참 신기한 존재들이며, 그래서 귀한 존재들이다.   

 

그래, 참 귀하다.

 



그다음으로 배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대안과정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집으로 가지 않지만, 대다수의 많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가서, 캠프 기간 중에 ‘다른 삶’을 경험했던 대로 사는지, 스스로 계획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수시로 보고해야 하며 유익한 피드백이 나올 수 있게 계속 밀어준다.      


집으로 보내는 이유는 확인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이 지식을 확인하는 것에만 그쳤기 때문이다. 시험이 불필요하지 않다. 시험이란, 자신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기에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집으로 보내야 한다. 1년을 더 붙잡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단 집에서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이 더 좋기 때문이다. 집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해 자신의 할 일을 잘 수행해 낸다면 굳이 1년 과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두 달 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학습 관련 프로그램도 병행하지만, 기초성품훈련을 고되게 시키는 것과 연관된다. 누구나 다 마음에 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것을 나는 ‘성품’이라고 하겠다. 이 밭에는 씨앗을 심었을 때,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것과 방해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공통적으로 ‘태도’라고 하겠다. 분명 좋은 태도는 사람의 마음에 심긴 ‘가능성’이라는 씨앗을 잘 키워낼 것이고, 좋지 않은 태도는 새가 주워 먹거나, 돌 틈 사이에 자라 금방 타서 사라지거나, 가시밭 사이에서 자라 조금 크다가 말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씨앗의 비유를 말함)      


조금 크다가 말 것은 아니지?


이어서 성경에서는 한 개의 씨앗이 좋은 밭에 심겨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전한다. 성경에서는 단지, 씨앗에 집중하고 있지만, 나는 좀 더 사고를 확장해 씨앗이 심긴 곳을 보았다. 많은 교회에서도 비슷하게 설명하지만 조금 빠진 부분이 있다. 그들은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고만 말하지, 좋은 밭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약간의 비판이 첨언된다면, 사실 교회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나는 마음의 밭을 성품이라고 말했고, 씨앗을 자라게 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것을 태도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꿈을 이루기 위해(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는 것) 좋은 태도가 있어야 한다. 가령 이런 경우다. 어떤 한 사람이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회사의 일이 버티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 사람은 1년도 채 안 되어 퇴사를 했다. 그러면서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버티기 힘들다’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참고 기다리는’ 태도가 부족한 것이다. 모든 경우에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폭언이나, 성희롱 등의 상황에서는 참을 필요 없으나, 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나 압박은 그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참지 못하여 나간다. 이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자신에게 딱 맞는 직장을 찾아 이직을 해도 기껏해야 2-3년일 것이다.   

   

태도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엄청 많다. 그만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져야 할 태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론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뎌야 하며, 변화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도전도 해야 하고, 늘 위험을 감수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고, ‘첫 번째 펭귄’처럼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도 되어야 한다. 때론, 리더의 자리에서, 팔로워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도 해야 한다. 나에 대한 자신감도 있어야 하고, 타인에 대한 가능성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태도들을 가져야만 꿈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      


나중에 생길 꿈에 더 빨리 다가가기 위해!


그래서 방법은 마음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밑이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빠지는 것보다 몇 배의 해당되는 물을 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을 깨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 빠지는 것보다 몇 배 이상의 물을 부어보았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하고 있는 방법은 독을 깨자는 것이다. 마음 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그 맡에 있는 크고 작은 돌들을 다 골라내야 한다. 그 돌을 골라내는 과정이 고르는 사람이나 돌이 골라내어지는 사람이나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한다. 한 사람은 빼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있던 것을 버리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책이 나오고 있는가. 버리기는 그만큼 힘들다. 아이들이 힘들게 2달을 버텼다. 내가 본 아이들 중에 가장 잘 버티는 아이들이지 않을까 싶다. 수 만 명의 아이들을 만나보지 못했으나, 나름 나이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 관심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그래도 오늘 무사히 잘 버티고 나가는 이 아이들이 가장 잘 견뎠다고 생각한다.     


캠프 중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생일을 맞았다.




아직 덜 빠졌다.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큰 돌을 마음 밭에 가지고 있는 나보다, 그리고 더 큰 어른들보다 낫다. 어른들은 그렇게 살아온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후회로 삶을 마감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아이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때 기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뜬 구름 잡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마음의 돌들을 제거한 사람만이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다. 나의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타인에게도 역시 가치가 있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인격, 그리고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들을 잘 견디면서 쌓아가는 실력, 마지막으로 타인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헌신까지 갖춘 인재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된 친구들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그렇게 되지 못할 수 있다. 그 아이들의 자녀의 세대쯤 가서 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누군가는 씨를 뿌려야 하고, 누군가는 돌이나 잡초를 뽑아야 한다. 누군가는 물과 비료를 적절하게 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커가는 줄기를 잘 받쳐줄 수 있는 지지대를 설치해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풍성하게 열린 열매를 따는 삶도 있을 것이다.      


나의 역할은 이미 인생의 선배들이 심어놓은 씨앗을 키우는 데 있다.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방해물을 제거하는 일이다. 나는 그 싹이 나오게만 해도 성공이다. 그러기 위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고 싶다. 나에게 보람이란, 하루하루 잘 버티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싹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이다.


너희가 미래다.

  



이제 정말 캠프는 끝났다. 여전히 기숙사에 남아서 마음 밭의 돌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도 있다. 참 대단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정말 믿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에 상당히 의심을 품고 있는 나이지만, 오늘만큼은 저들의 가능성과 생각을 믿어주고 싶다.

    

얘들아, 너희는 지금 돌을 골라내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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