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제주도 1

by 이뉴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합격까지는 했으나, 몇 천 되는 학자금을 간신히 갚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포기해 버렸다. 다시 빚질 수 있었는데 다시 갚을 자신은 없었다. 솔직히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후회되지 않냐고 물어보던데, 핑계였던 마음 때문이었는지 대학원 가지 않은 게 후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 나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를 후원해 주던 복지단체 선생님들과 연이 계속 이어지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왔었다. 졸업 후에 정식으로 같이 일할 수 있게 되어서 나 또한 좋았다. 명색이 신학생인데, 교회 현장에서 하는 일반 사역에 눈길이 간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일반 사역이 솔직히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함께 노는 게 더 좋았기 때문에 기관 사역으로 뛰어들었다. 여러 가지 자격들을 갖추고 방과후학교랑 캠핑 사역을 스승님 밑에서 열심히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에서 연락이 왔다. 도내 몇 개의 교회가 힘을 합쳐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데, 우리가 맡아서 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동안 스승님이 발품 팔아 가면서 확장시킨 결과가 드디어 열매를 맺나 싶었다. 나도 당연히 승낙하고 같이 들어갔다. 솔직히 가기 전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생활비도 내 동기들 수준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랐고, 하는 일은 초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명과 열정이라는 그 뜨거움은 현실을 모조리 뭉갤 만큼 강력했다. 차도 폐차하고, 아무도 관리하지 않게 되는 시골집만 덩그러니 놔둔 채, 그 해 겨울,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들어갔다.


같은 대한민국인데, 충분히 올 수 있는데도 이 배를 타면 쉽게 육지를 가지 못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 종교적이라 배제하겠지만, 아무튼 어디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비장한 선교사의 마음과도 같았다. 그동안 30번 이상을 오간 제주도가 이렇게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지 커다란 배 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세차게 밀고 나가는 에스컬레이터 달린 배는 야속하게도 금방 제주항에 도착해 버렸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눈 말똥말똥 뜬 채 새벽을 보냈다.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생애 첫 그 순간을 뜬 눈으로 보냄과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찾아오는 불안감까지 더해 나의 첫 제주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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