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
시작은 매우 좋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 이상한 뜨거움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피곤함도 잊은 채 몇 달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쏟아부었다. 막일 다녔던 게 도움이 됐는지 미장이며 니스칠이며 목공 일이며 잘하진 못해도 보조 맞출 정도까지는 할 수 있었다. 원래도 잠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 적게 자는 잠도 줄여가면서 네 달 가까이 보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몇 개의 교회가 힘을 합쳐 살려보겠다고 시작한 이 커뮤니티가 서서히 붕괴될 조짐이 보였다. 우리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나 뭐라나. 설득의 과정이 필요했으나 좀 웃겼던 게 충분한 설명을 했고, 선택은 본인들이 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난리를 부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천의 OO교회에서도 같은 이유로 2년 반 만에 나가게 됐을 때라 나는 몹시 예민했다.
자기네들이 이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프로그램만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한두 교회가 떨어져 나갔다. 우리 입장에선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입맛만 다시기에는 다른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입소문도 나서 오히려 제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가세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커진 파이는 많은 이들이 잘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좋아 보였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은 일인데, 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현타’라고, 급격하게 태워버린 내 안의 연료는 이제 나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뜨거웠던 사명과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안은 온통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기일 때문에 잠시 방문한 고향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내 앞에 차가운 현실은 더욱 독기가 오른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현실을 해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꿈이라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서 저쪽으로 치워버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놈들은 낭만까지 뚫고 올라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번 기울어진 추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월급도 보이기 시작했고, 몇 년 간 발전하지 못한 내 모습에 치를 떨기 시작했고, 솔직히 우리의 이 단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수년간 배우면서 익힌 말들이 온통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것이 혹시 세뇌인가 싶을 정도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과감히 뛰어들었던 나의 용기와 사명, 그리고 열정까지 폄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욕심으로, 욕망으로, 이상한 최선이었을지 모른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결과는 이미 예전 글에 나와 있다. 나는 육지에서 돌아온 그날 밤, 홀로 짐을 싸며 도망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가 아니니, 도망이나 다름없다. 바다 앞, 생과 사의 치열한 싸움 끝에 다시 일어나 돌아선 생의 길은 결심했던 것 그 이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내편이 아니고, 이미 다른 사람들은 한참이나 앞서 가고 있는데. 그나마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가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나의 꿈이었던 제주 생활은 끝이 났다.